통계청에 대한 청와대의 외압은 광범위했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양파값이 크게 올라 파동을 겪은 뒤 양파 생산량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나자 이를 공표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등 농업이나 산업 통계의 발표에도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산업활동동향·고용동향 발표를 앞두고는 수시로 통계청장을 불러 사전에 정보제공을 요구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사전에 제공할 수 없도록 돼 있는 통계수치를 미리 공유하자고 하는 것도 통계청에 대한 외압이 아닐 수 없다. 또 물가지수를 낮추기 위해 생명보험료를 물가지수 품목에서 제외하고, 금값이 오르자 금반지도 조사 대상에서 뺐다고 한다.
압권은 새 지니계수 관련 사례다. 통계청은 지난해 소득분배지표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기 위해 새 지니계수를 도입했다. 표본 수를 크게 늘리고 고소득자 소득을 반영해 11월9일 공표하겠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대선을 앞두고 부담스럽다는 뜻을 전해와 공표 시점이 대선 뒤로 미뤄졌다. 새 지니계수를 적용하면 우리나라 소득분배 순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 나라들 가운데 18위에서 29위로 떨어진다. 분배지표가 개선되는 추세라고 했던 이명박 정부의 주장과 달리 양극화가 심화됐음이 드러난 것이다. 대선이란 시점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고려해 공표를 늦췄다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공표 시점을 임의로 변경하는 것은 통계조작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통계법은 엄격한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며 작성된 통계는 지체없이 공표하도록 하고 있다.
국민에게 직접 영향을 끼치는 국가자원인 통계는 신뢰성이 생명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통계청의 정치적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통계청이 기획재정부의 외청으로 있어 외압을 받기 쉽다. 국회 동의 절차 또는 임기제 보장으로 통계청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립하고 전문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다른 기관의 통계가 통계청의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임의로 발표돼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일도 있는데, 국가통계의 품질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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