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수사결과 발표 뒤 ‘선거개입 댓글 67개’라며 “몇몇 인터넷 사이트에 댓글 올리는 방식으로 선거 결과를 바꾸겠다는 정치공작”이 가능하겠느냐고 선거법 적용에 의문을 나타냈다. 어제는 내부 인사 칼럼을 통해 ‘국기문란’으로 보는 게 ‘오버’라며 “댓글에 영향 받아 투표한 사람이…몇 사람이나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지난 4월24일치 1면에 실린 내부 칼럼에서 ‘대선 여론 조작 목적이면 330위 사이트 골랐겠나’라며 ‘대북 심리전’이란 국정원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를 전개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새누리당은 검찰 발표 직후 원내대변인이 조선일보 보도를 인용해 “선거개입을 적용한 것은 전체 댓글의 3.8%에 불과”하다고 사건의 의미 축소에 나서자 당내 주요 인사들이 비슷한 논리로 견강부회에 동참했고, 급기야 “운동권 출신 검사가 이해할 수 없는 공소장을 썼다”며 색깔론까지 동원했다. 이런 유의 주장들은 기초적인 사실조차 왜곡한 언론과 이에 부화뇌동한 새누리당의 시대착오적인 ‘오만’이 빚어낸 위험천만한 불장난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선거 관련 댓글이 3.8%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검찰 발표문에도 나와 있듯이, 국정원 직원들이 이미 삭제하고 실수로 남긴 댓글들만 추린 것이란 사실을 의도적으로 간과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연초까지 국정원 직원들이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디 수백개가 회원을 탈퇴하면서 관련 글이 삭제됐고, 포털 다음의 토론게시판 ‘아고라’에는 지난해 7월 이후 국정원 직원 아이디로 쓴 글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모두 삭제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찬반 클릭도 북한·종북좌파 관련 게시글엔 2.7%밖에 하지 않았고, 대선이 임박한 기간엔 주로 선거 관련 글에 클릭을 한 사실도 이들 활동의 의도를 잘 보여준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총선 두 달 전 “종북좌파들이 정권 잡으려는데 확실히 대응 안 하면 국정원이 없어진다”며 대놓고 선거개입을 지시하고 그즈음 심리전단을 확대했다. 이런 사실이 발표문에 다 나와 있는데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게 상식에 부합하는 주장인지 새누리당과 수구언론들은 자문해보기 바란다.
이들의 댓글 활동이 선거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는 현재로서 검증할 길이 없다. 그러나 대선 사흘 전 경찰이 대선 개입 댓글 내용을 덮지 않고 사실대로 발표했다면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선거에 전혀 영향이 없었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런 정황을 외면하며 국정원의 불순한 동기를 애써 감싸려는 것은 정상적인 언론의 태도로 보기 어렵다.
수구언론들의 이런 행태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의 공정성을 뿌리째 뒤흔든 국기문란 행위에도 침묵으로 버티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커다란 원군이 되고 있다. 이들이 종합편성채널 허가를 앞두고 ‘4대강 삽질’에 침묵했던 이명박 정부 시절의 과오를 내년 허가 갱신을 앞두고 되풀이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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