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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세상 읽기] 유신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 이도흠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6. 19.

 

등록 : 2013.06.19 18:59 수정 : 2013.06.19 18:59

 
이도흠 한양대 교수·민교협 상임의장

유신 시대는 국가 전체가 병영이었다. 말과 생각과 표현은 억압당하고 통제되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군사독재를 비판하고, 건전한 자본주의를 만들고자 정경유착을 비판해도 빨갱이로 몰려 고문당하고 투옥되고 심지어 죽기까지 했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 필수과목으로 군사훈련을 하고, 형사나 정보부 요원이 교정에 들어와 학생과 교수를 감시하였다. 신중현의 ‘미인’이나 한대수의 ‘물 좀 주소’처럼 전혀 정치성이 없는 노래도 금지곡이었고, 머리가 길다고 잘리고 짧은 치마를 입었다고 즉결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1987년 이후 누구도 그런 퇴행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과 행동에서 아버지의 그림자를 보고는 오싹함을 느꼈던 이들조차 진보 의제나 경제민주화는 몰라도 정치적 민주주의만큼은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고 애써 가슴을 토닥였다.

 

하지만 지금 민주주의는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최전방의 병사가 전쟁 위기를 가장 먼저 감지하듯, 민주주의의 최전선에 선 노동·시민단체의 활동가들은 요새 ‘계엄정국’ 같다는 말을 한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집회 및 시위의 자유가 원천봉쇄당하고 있다. 지난 17일에 필자는 쌍용자동차 범국민대책위 공동대표 자격으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하여 청와대 앞으로 갔다. 우리의 수십배에 달하는 경찰들이 겹겹이 둘러싼 채 허가가 난 회견장 공간을 점유하고 있어 오랫동안 승강이를 벌인 끝에 겨우 기자회견을 하였다.

 

회계조작에 의하여 2646명의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부당하게 해고당하고, 이에 항의하는 이들에게 전쟁에 상응하는 폭력을 휘둘렀고, 실제로 참전 병사들이나 겪는 외상후 스트레스와 절망감, 생계위기 속에서 24명이 사회적 타살을 당하였다. 대선 때 여당의 대표조차 부당성을 인지하고 국정조사를 약속하였다. 진보적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이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이고, 대표들이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으나 답이 없어 기자회견을 한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오후 5시까지 농성을 하다가 촛불문화제를 한 뒤 대한문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집회를 불허하였기에, 우리는 분향소가 있던 자리 주변에 우비를 입고서 주저앉았다. 발언도 하지 않은 채 비를 맞으며 조용히 앉아서 밤을 지새웠다. 밤 11시가 지나서 한 사람이 깔판을 펴려고 하자 경찰은 이를 제지하였으며, 곧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경찰은 이에 그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우리에게 4, 5인 1조로 달려들어 팔과 다리를 붙잡아 제압하고는 들어올려 덕수궁 앞에다 내동댕이쳤다.

 

그날 이 땅의 민주주의 또한 패대기쳐졌다. 쌍용자동차만이 아니다. 재능교육·현대자동차도 계속 집회를 불허당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이며, 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이다.

 

집회는 허가사항이 아니라 신고사항이다. 지금 언론 또한 통제되고 있고, 대통령은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민간인 사찰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가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는 지름길은 정치적·경제적 민주화를 추진하고 아버지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연고주의와 가족주의가 강한 한국에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이것이 경찰의 과잉충성이었다면 당장 책임자를 징계함이 마땅하다. 대통령의 뜻이었다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모든 이들이 연대하여 저항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이도흠 한양대 교수·민교협 상임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