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대화록 공개는 사전에 여당 지도부와의 치밀한 공조 아래 이뤄진 인상이 짙다. 20일 오전 여야 원내대표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국정조사를 위해 노력하고 국정원 개혁에 즉각 착수하기로 합의한 뒤 그날 오후 한기범 국정원 1차장이 국회 정보위원장실로 2007년 정상회담 대화록 원문과 발췌본을 들고 왔다. 서상기 위원장과 4명의 새누리당 정보위원들은 열람 내용을 외부에 유출하지 않겠다는 ‘보안각서’까지 썼으나 다음날 일부 언론들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국정조사를 물타기 하려는 여권과 국정원의 ‘공작’에 일부 언론이 부화뇌동하면서 빚어진 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원세훈 국정원장 시절 벌어진 불법행위에 대해 현 국정원은 반성과 함께 재발을 방지하겠다고 선언하는 게 조직 보호를 위해서라도 당연한 순서다. 그런데 ‘남재준 국정원’이 반성은커녕 과거의 잘못을 파헤치지 못하게 가로막고 나선 데는 다른 저의가 읽힌다. 국정조사가 현 정권에 미칠 파문을 줄이려 정상회담 대화록을 이용한 ‘정치공작’에 총대를 메고 나선 게 아니냐는 것이다. 수시로 대통령에게 독대 보고하는 국정원장의 업무 특성상 이번 대화록 공개가 청와대의 뜻과 무관하다고 보기 힘들다. 특히 인터넷을 통한 일반인 공개까지 대놓고 주장하는 걸 보면 그런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의 지난 대선 개입은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한 심각한 국기문란 행위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회가 나서 조사하겠다면 달게 받아들이는 게 마땅하다. 이전 국정원에서도 꺼리던 정상회담의 대화록 원문까지 돌연 들고나온 것은 정략적 목적을 위해 국익을 해치는 파렴치한 정치공작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권에서까지 국정원의 공작정치가 되풀이되는 것은 허투루 넘길 수 없다. 박근혜 정부는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더 이상 무리수를 두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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