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성 소설가 |
때로 권력과 자본이 법전을 형편없이 구겨버려도, 87년 이후 헌법 전문은 어김없이 짙푸르렀다. 6월의 손으로 거기 임시정부와 4월을 아로새기었기에. 어떤 심오한 조문도 이 전문의 거룩함을 당할 수는 없다.
명토 박아 넣지는 않았지만 6공화국 헌법 머리에는 5월과 6월이 깊게 스미어 있다. 헌법 전문과 130개조, 부칙 6개조는 남영동 대공분실 욕조 물에 상체가 반쯤 잠기고 머리에 직격 최루탄이 박힌 채 출생신고를 했다. 그 상징이 박종철, 이한열이다. 현행 헌법은 6월항쟁의 피와 땀과 눈물로 태어났다. 대통령 직접선출은 말할 것도 없다. 10·26 이후 신군부독재로 이어진 강고한 유신체제는 6월에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대중의 함성으로 부스러져 내렸다. 각하의 구국의 결단에 따라 하사받던 헌법이 온전하지는 않지만 비로소 상당 부분 주권자의 몫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6월은 저 80년 5월 광주에 대한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분노, 장기 유신에 대한 항거의 전국적 확산과 완성이었다.
기록된 2000년 한국사에서 정치권력의 전면적 교체는 고작 서너 번뿐이었다. 이는 세계사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분열시대나 지방국가를 뺀 하 상 주 포함 진나라 이래 통일왕조만 해도 15번에 걸쳐 교체된 중국에 비한다면 숫제 경이적이라고 해야 맞다. 그나마 고려왕조는 경주 개성 세력연합과 진골 성골이 독점해오던 권력이 육두품까지 확대된 것이었다. 조선 개국은 지배권력에서 승려계급 추방과 토지소유권 재구성이 핵심이었다. 새 지배층이 자주 출현하지 않았다는 건 세력교체 가능성이 낮았다는 뜻이고 그만큼 기득권 유지는 장구할 수밖에 없었다. 봉건왕조가 망한 것은 비극적이게도 제국주의 침략에 따른 결과였다. 구한말 지배층 다수는 어떤 성찰도 미련도 없이 곧장 새 권력 일제에 빌붙어버렸다. 안팎으로 수행해야 하는 저항은 여전히 민중의 몫이었다.
칸칸이 피 묻지 않은 적 없는 긴 통사에 숱한 항쟁이 있었으되, '민중'이나 '시민'이라는 불특정 다수 대중이 현실 권력과 싸워 직접 승리를 거둔 것은 우리 역사에서 단 두 번이었다. 4월혁명과 6월민주항쟁이다. 이 민주주의 역사야말로 아시아를 넘는 진짜 한류다. 한국민은 자신이 싸운 만큼씩만 자유와 권리를 누려왔다. 굳이 민주주의에 ‘한국적’이라는 말을 붙여야 한다면 오직 4월, 그리고 6월뿐이다. 헌법은 강력한 지도자가 국민에게 잘 포장한 선물로 안겨줄 때 한낱 파렴치한 독재헌장일 따름이다. 1인을 위한 헌법은 해방 이후 역사에서 적어도 세 번 이상 있었다.
공화정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절차의 투명성으로 생성, 동의, 지속된다. 절차는 공화정의 형식이자 내용 그 자체다. 직접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일은 6월이 온몸을 던져 얻어낸 가장 중요한 주권자의 권력위임절차다. 국가정보기관의 대선개입과 현 권력의 그 처리행태는 이 윤리성을 구체적으로 훼손하고 있다.
식민지시대 이 땅을 한 줄기로 울리고 간 질문이 있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다. 오늘, 이 여름 햇살은 정당하게 뜨거운가. 헌법이 근육을 꿈틀거리면서 묻고 있다. 어느 시대든 불의가 자유로울 때 보이지 않는 경찰서에서는 정의가 오라에 묶이는 법이다. 주권자의 시요, 디케의 입술이어야 마땅한 헌법을 6월에 읽는 까닭이다.
서해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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