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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아침 햇발] 원세훈 ‘배후’ 캐기 / 김이택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3. 27.

등록 : 2013.03.26 19:11 수정 : 2013.03.27 10:02

 

 

김이택 논설위원

 

 

박근혜 정부 출범 1개월. 인사 실패가 줄줄이 이어지면서, 어떻게 골라도 그런 사람들만 골랐느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사검증 시스템이 문제라느니 말들이 많지만 핵심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사람 보는 눈에 문제가 있는 탓이다. 그런데도 주변 참모 누구도 그런 말을 못하는 모양이다. 한마디로 동화 속 ‘벌거벗은 임금님’ 꼴이다.

 

놀라운 건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부터 선보인 ‘고집불통’에다 실패작인 ‘수첩인사’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44%나 된다는 사실이다. 지지층 충성도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렇게 죽을 쑤고도 그 정도 나오는 건 역시 박근혜의 힘이다.

 

열성적 지지자들 덕분이겠지만, 드러나지 않게 뒤를 받치고 있는 우리 사회 보수기득권 ‘동맹’의 힘도 빼놓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 초기 수구보수언론과의 관계가 과거 보수정권들만 못하다는 말도 있지만 이해관계를 둘러싼 계산과 조율이 아직 끝나지 않은 탓으로 봐야 한다.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의 추이를 보면 끈끈한 이념적 동지 관계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대선 전까지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은 이 사건이 “야당의 인권침해”라는 쪽이었다. 보수언론들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대선 뒤 댓글 내용과 이른바 ‘대북심리전’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면서 형세가 이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박 대통령을 비롯한 새 정권 쪽 인사들은 뻔히 보이는 ‘공작’을 모르는 척 침묵으로 버티며 사실상 국정원의 책임회피 시도를 방조했다. 대부분의 수구보수언론 역시 ‘무시’ 전략으로 사실상 새 정부와 보조를 맞췄다. 그러다 원세훈 국정원장의 ‘지시 말씀’까지 폭로되고 더이상 변명하기 힘든 상황에 몰리자 일부 언론은 “국정원의 ‘종북세력 선동’ 대응 활동은 당연한 책무”라며 방어에 총대를 멨다. 극우단체들은 아예 ‘안보위기 상황에서 공안기관 흔들기’라고 광고까지 내며 대놓고 역공에 나섰다.

 

며칠 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도망치듯 출국하려다 발이 묶인 사건이 터지면서 침묵 내지 방어에만 매달리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지만 보수언론은 외려 출국을 금지한 검찰을 나무라는 분위기다.

 

이 사건은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과 닮은 데가 있다.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 법의 테두리를 넘는 비밀활동을 벌였다는 점이 우선 그렇다. 또 그들이 ‘일심충성’하면서 사찰하고 정권홍보를 감행한 것이 결국 최고위층 한 사람에게 보고하기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게 아니라면 그렇게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와 국정조사를 예약해놓은 운명도 닮은꼴이다.

 

보수기득권 동맹은 보수정당·정부와 이를 지탱해주는 검찰 등 권력기관, 그리고 재벌과 수구보수언론에다 영남지역의 막강한 지지가 원동력이다. 동맹의 두 축인 검찰과 보수언론은 이명박 정권 내내 내곡동 사저 비리와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파헤치는 데 소극적이었다. 검찰은 축소수사로 대충 덮으려 했고 보수언론 역시 취재·보도에 별로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동맹의 이해관계엔 도움이 되지 않을지 몰라도 국민 입장에선 반드시 알아야 할 사안들이다. 국정원 의혹까지 포함해, 사건 배후에 대통령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새 검찰총장 후보자가 정치검찰 불명예를 떼려고 한다면 이런 ‘정치’ 사건이 제격이다.

 

야당으로서도 정부조직법 개정 협상 과정에서, 국회선진화법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무기임을 알게 됐다. 스스로 이름붙였듯이 ‘원세훈 게이트’의 실체와 배후를 캐는 데 만만찮은 무기를 갖게 된 민주당의 책임도 함께 커졌다. 동맹의 전횡을 막을 좋은 기회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