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노트북을 열며] 로스 페로의 운명, 안철수의 길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3. 27.
[중앙일보] 입력 2013.03.27 00:55 / 수정 2013.03.27 00:55

 

 

채병건
정치국제부문 차장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돌풍을 몰고 왔던 로스 페로와 20년 후 한국 대선을 흔들었던 안철수 후보의 정치 과정을 비교하면 유사점이 많다.

①지난해 안 후보는 양자대결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자주 추월했다. 92년 6월 페로는 갤럽 여론조사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31%), 빌 클린턴 주지사(25%)에 모두 앞선 39%로 1위였다. 무소속 주자가 1등을 한 것은 갤럽 여론조사에선 60년 만에 처음이었다.

②그해 3월 18일 페로는 워싱턴의 프레스클럽 연설에서 “매일 보는 게 의회와 백악관이 애들처럼 서로 손가락질하고 싸우고 소리 지르는 모습이다. 이젠 진흙탕 싸움 같다”고 워싱턴 정치를 싸잡아 비판했다. 안 후보는 지난해 9월 19일 대선출마 선언에서 “많은 분들이 서로 싸우기만 하는 정치에 절망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③전국 조직도 없던 페로가 대선에서 18.9%라는 놀라운 득표율을 올리자 뉴욕타임스는 대선 이틀 후 분석기사에서 ‘페로 군단’을 무당파와 정치 불신층, 45세 이하, 백인(중산층)으로 지목했다. 안철수 바람의 진원지도 무당파, 2030세대, 화이트칼라였다.
 
④대선에서 패배했지만 페로는 3년 후인 95년 제3정당인 개혁당을 창당했다. 안 후보도 서울 노원병 보선에서 승리하면 독자세력화가 예상된다.

 관심사는 그 이후다. 페로는 96년 미 대선에 개혁당 후보로 재도전하지만 4년 전의 열풍은 없었다. 8% 득표율로 끝났다. 페로의 명멸은 안 후보에겐 많은 시사점을 준다. 무소속 주자가 정치권의 무능력·편가르기에 염증 난 유권자들의 체증을 뚫어주며 혜성같이 등장할 수는 있어도 정치 비판만으론 바람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페로가 두 번째 도전에서 실패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신선감은 이미 떨어졌다. “전쟁도 규칙이 있고 진흙탕 싸움도 규칙이 있는데 정치는 룰이 없다”와 같이 정치권을 공격한 레토릭은 먹히지 않았다.

안 후보가 ‘새 정치’로 노원병에 뛰어들었지만 아직은 구태 정치를 벗어나겠다는 추상적 구호 수준의 새 정치일 뿐이다. 새 정치의 ‘새로운’ 좌표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최근 트위터에 “새 정치는 정치가 해야 할 일을 하자는 것이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게 새 정치”로 설명했는데 이는 새 정치의 방식이지 새 정치의 내용은 아니다. 그가 가시밭길을 헤쳐서 도달할 경제·사회·이념적 목표가 무엇인지 선명하지 않다는 얘기다.

안 후보는 페로와 달리 대선에서 평가받지 않았고, 민주당이라는 선택지도 남아 있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 다시 뛰어든 이상 알쏭달쏭한 정치권 관전평을 넘어서는 구체적 노선과 비전이 필요하다. 안 후보에게 준비된 비전과 목표가 있는지는 당장 여야가 대치하는 정치 현안에서부터 드러날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두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부터 북한인권법 제정안 방향에까지 ‘안철수의 생각’을 묻는 질문들이 줄줄이 준비돼 있다.

채 병 건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