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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사설] 진정성 없는 정부의 통상임금 대화 제의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5. 21.

등록 : 2013.05.20 19:09 수정 : 2013.05.20 19:09

[한겨레신문]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어제 통상임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노사정 대화를 제안했다. 한마디로 실망이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재계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자리이니’ 하고 이해할 구석이 있었지만, 노동자 편에 서야 할 노동부 장관마저 똑같은 장단에 춤을 추고 있기 때문이다. 방 장관이 한국노동연구원에서 17년 동안이나 일한 게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방 장관의 발언은 사법부의 위상을 깎아내리고, 판결의 기능과 역할까지 부인하는 걸로 일관했다. 방 장관은 “최근의 논란은 (노동부의) 지침과 (대법원의) 판례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과 노동부가 대등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대법원은 법령이 미흡할 경우 판결로써 최종적이고 통일적인 해석의 기준을 제시하는 ‘최고의 권위’이다. 노동부는 그저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법을 집행하면 되는 곳이다. 방 장관의 이런 발언은 삼권분립을 규정한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으로서, 이만저만한 월권행위가 아닐 수 없다.

 

방 장관은 또 지난해 3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킨 대법원 판결을 두고도 “전원합의체 판례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원합의체는 기존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거나, 소부에서 합의를 보지 못할 경우 소집된다. 구성원이 13명이냐, 4명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똑같은 대법원 판결이고, 효력은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이미 20년 전부터 수많은 판결을 통해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고정적 임금은 통상임금’이라고 밝혀왔다. 어떤 대법관도 이런 판례에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고 판례를 바꿔야 할 필요성도 없었기에 소부에서 결정된 것이다. 이를 두고 판례의 무게가 떨어지는 것처럼 말한 것은 무지의 소치이거나 악의적인 폄하다.

 

오히려 혼란을 키운 곳은 노동부다.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 즉시 관련 행정지침을 개정하면 됐을 것을 손 놓고 있다가 이제 와서 노동계에 양보하라고 하면 누가 그 협상에 응하겠는가.

 

기업도 대법원의 판결을 흔들려 하지 말고 오히려 이를 장시간·저임금 노동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11년 한국 노동자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2090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 노동시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 야근과 일요근무다. 통상임금 수준이 높아진 만큼 기업 스스로 비용 절감을 위해 노동시간을 줄이고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대책을 세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