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20 20:20 수정 : 2013.05.21 10:00
허병두 숭문고 교사·책따세 대표 |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합작해 구성한 지면으로 두 신문의 사설을 통해 중3~고2 학생 독자들의 사고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도록 비교 분석하였습니다. 다음번(5월28일)에는 ‘갑을 관계’에 대한 논제가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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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대 논리]
정년 연장 필요성엔 한목소리…임금피크제 보는 시각은 큰 차이 단계 1 공통 주제의 의미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몇 년 전 나온 어느 카드회사의 광고 카피였다. 치열한 사회에서 벗어나 휴가를 즐기라는 의미지만 정년을 앞둔 세대에게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열심히 일했지만 이제는 직장을 떠나라!'로 말이다. 소비를 충동하는 광고가 소득이 중단된다는 경고로 들리는 것이다.
고령화 시대에 정년을 맞이한 세대가 맞닥뜨리는 각종 사회경제적 문제는 심각하다. 노후 보장 제도가 아직 취약한 탓에 퇴직 이후의 삶을 개인이 책임져야 하기에 그렇다. 우리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인구 감소 시대가 되면서 숙련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없어 문제다.
이를 해결하고자 국회는 노동자 정년을 2016년부터 60살로 의무화하는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정년을 60세로 연장한다는 게 핵심이다. 현행법에는 정년 60세가 권고 조항이다. 이를 의무로 바꿈으로써 60세까지 고용 안정을 보장하고 양질의 노동력을 확보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정년 연장과 같은 해결 방식은 세계적인 흐름과도 일치한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우리 현실에 적용하느냐다.
단계 2 문제 접근의 시각차
중앙일보와 한겨레 모두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하지만 이를 도입하는 방식과 시기 등에 대해서는 뚜렷한 시각차를 보인다.
한겨레 정년 연장에 적극, 임금피크제는 유보
한겨레는 이 법안이 확실히 정착할 수 있도록 사업주가 정년 연장을 지키지 않을 경우 처벌 조항을 구체화하라고 주장한다. 좀더 적극적이다. 반면 정년 연장에 따른 기업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정부의 보완책인 임금피크제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다. 법안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오히려 임금이 깎이는 계기가 될 수 있으므로, 노사 합의에 따라 사업장마다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적극적인 자세는 이번 기회에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 고용 불안과 관련한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라는 주문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중앙일보 정년 연장 소극, 임금피크제는 찬성
반면 중앙일보는 사회적인 준비가 아직 부족한 상태라며 정년 연장법을 당장 적용하는 데에 소극적인 입장이다. 일본도 이 법이 사회 전체에 실효를 발휘하기까지 4년여 시간이 걸렸다는 예도 든다. 이 법안으로 인해 고령자의 고용이 촉진되는 만큼 청년 고용은 축소될 것이라는 견해다.
또한 이 법은 이미 60세 정년의 혜택을 받고 있는 공무원과 공기업, 대기업에만 실익이 집중될 뿐이라는 점도 경고한다. 임금피크제에 대해선 한겨레와 달리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필수라며 정년 연장을 법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법은 통과됐지만 실제로 적용하는 시점을 최대한 늦추자는 주장이다.
두 신문사는 제목에서도 입장 차이 드러내
두 신문 사설 제목에서도 이러한 태도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중앙일보는 ‘정년 연장의 부담은 누가 떠맡나'라는 수사적 의문형 제목을 통해 이 제도의 도입으로 파생할 문제점에 대해 환기시킨다. 반면 한겨레는 ‘정년 연장이 임금 삭감의 빌미 돼선 안 돼'라는 단정적 표현으로 이 법안 도입으로 근로자가 다른 권리를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부각한다 .
단계 3 시각차가 나온 배경
정년연장법은 출산율 감소와 급속한 노령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고자 등장한 방안이다.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현실에 적용할 것이냐는 쉽지 않은 문제다. 고통을 분담해 달라는 선의의 요구가 현실 속에서는 상대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억압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와 한겨레의 사설은 이러한 고민의 결과다. 실제로 노동의 공급과 수요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주체의 시각차가 존재한다. 이를테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영세 기업과 같이 규모와 내실이 차이가 날 경우 사안을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혹은 내수 중심이냐 수출 중심이냐,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등에 따라 다양한 변수가 웅크리고 있다.
다만 두 사설 모두 아쉬운 점이 있다. 한겨레는 문제를 단지 60살 정년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구조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거시적 관점까지 다양하게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좋지만 논의의 초점을 분산시킨다는 점에서 아쉽다. 한편 중앙일보는 “기업들만 죽어난다”와 같은 불필요한 표현으로 스스로 논란을 야기한 측면이 있다. “그럼 노동자만 죽어나라는 식이냐” 같은 감정적 대응을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키워드로 보는 사설]
임금피크제
다. 임금피크제를 언급하는 이유는 정년 연장이 실시되면 발생할 비용을 기업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양사 사설 모두 이런 문제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임금피크제를 접근하는 방식은 명백히 다르다.
중앙일보는 기업 부담을 강조하면서 임금피크제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겨레는 임금피크제가 논의되는 배경을 구조적으로 제시한다.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악용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좀더 섬세하게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정부는 현재 임금피크제가 논의되는 사회적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두 사설의 엇갈린 주장에서 알 수 있듯 임금피크제야말로 현실적으로 가장 쟁점이 되는 핵심 고리다. 여기서 또 다른 해법은 없을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고용 보장과 책임 분담의 두 갈래 길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새로운 키워드는 없는 것일까. 덴마크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이 추구하고 있는 유연안전성(flexicurity)이 답이 될 수 있다. 유연안전성이란 각각 노동과 고용의 측면에서 사용자 쪽과 노동자 쪽을 대표하는 용어인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전성(security)을 조합한 용어다. 다시 말해 기업이 원하는 노사관계의 유연성과 노동자가 원하는 고용안정성·사회보장을 동시에 확보하고자 하는 정책이다. 프랑스 의회도 최근 기업의 고용유연성을 확대하면서 노동자의 실업수당과 사회보장 혜택을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추천 도서]
사회가 만든 ‘부지런한 가난뱅이’
가도쿠라 다카시 지음, 이동화옮김
상상예찬 펴냄, 2008년
정년 연장이 보장돼도 누구나 워킹 푸어(working poor)가 될 수 있다. 일하고도 가난해질 수 있는 시대, 이른바 워킹 푸어 시대가 된 것이다. 이 책은 일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언제라도 워킹 푸어가 될 수 있는 냉엄한 현실을 다루고 있다. 또 ‘부지런한 가난뱅이’ ‘무너지는 중산층’ ‘고용 붕괴’ 등의 주제를 통해 워킹 푸어 문제가 단지 개인에서 끝나지 않고 심각한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이어져 공멸의 비극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노사가 정년 연장에 대한 부담을 합리적으로 나누고자 할 때 참고해야 할 책 가운데 하나다. 덧붙여 <노동을 거부하라!>(크리시스 지음, 이후 펴냄)는 유럽 좌파적 관점에서 노동 자체의 의미를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자신의 이념적 성향과 상관없이 노동·인간·사회의 맥락을 심도 있게 보는 데 참고할 만하다. 최근 출간된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스베냐 플라스푈러 지음, 로도스 펴냄)에는 향락 노동이란 개념이 등장한다. 현대인이 노동을 즐거움으로 가장해 스스로에게 강요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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