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5-20 21:03:13ㅣ수정 : 2013-05-20 23:09:52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이 ‘반값 등록금’ 정책에 대한 여론조작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국정원이 2011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로 파상공세 차단’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공개했다. 이른바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에 이어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광범위하게 개입해온 증거가 추가로 확인된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해당 문건 작성자의 상관인 추모 국장이 현재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파견 근무 중이라는 사실이다.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린 국정원 간부가 징계나 처벌을 받기는커녕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다니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검찰 수사가 확대돼야 함은 물론 청와대와 여당도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진 의원이 공개한 문건에는 “각계 종북좌파 인사들은 겉으로는 등록금 인상을 주장하면서도, 자녀들은 해외에 유학보내는 등 이율배반적 처신(을 하고 있다)”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문건은 자녀를 유학보낸 인사로 민주노동당 권영길, 민주당 정동영 전 의원을 거명했다. 이어 “야권의 등록금 공세 허구성과 좌파 인사들의 이중처신 행태를 홍보자료로 작성, 심리전에 활용함과 동시에 직원 교육자료로도 게재(한다)”라고 명시했다. 대선후보를 지낸 야당 중진들에게 ‘종북’ 딱지를 붙여 여론을 조작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이다. 1960~1970년대 정치공작을 위해 반정부 인사들의 뒤를 캔 중앙정보부의 행태를 연상케 한다. 실제 정 전 의원의 경우 몇 해 동안 계속 인터넷에서 ‘종북좌파’라는 공격을 당해왔다고 한다.
일련의 문건이 작성된 시기는 시사적이다. 반값 등록금 관련 문건은 2011년 6월, 박원순 시장 관련 문건은 같은 해 11월 작성됐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이 상시적, 조직적으로 국내 정치에 개입해온 정황을 보여준다. 검찰이 수사 중인 ‘정치 댓글’ 사건이 일회성 일탈이 아님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그럼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해와는 대조적이다. 대선 직전 박근혜 대통령은 댓글 작업을 한 국정원 직원 김모씨 사건을 두고 “(민주당이) 감금했다. 인권침해”라고 적극 공박했다. 하지만 국정원 정치 개입 의혹의 실체가 드러나자 외면하는 모습이다. 새누리당도 대변인의 형식적 논평 외에는 입을 닫고 있다. 파장이 확대될 경우 정권의 정당성에까지 영향을 미칠까 우려함일 터이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외면한다고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덮으려 하면 할수록 의혹은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상돈 전 중앙대 교수가 박근혜 정부에 적극적 대처를 주문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의 헌정유린·국기문란 행태를 엄단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반값 등록금 관련 문건 책임자인 추 국장을 즉각 청와대에서 내보내고 검찰에 성역 없는 수사를 지시하기 바란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외면한다고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덮으려 하면 할수록 의혹은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상돈 전 중앙대 교수가 박근혜 정부에 적극적 대처를 주문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의 헌정유린·국기문란 행태를 엄단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반값 등록금 관련 문건 책임자인 추 국장을 즉각 청와대에서 내보내고 검찰에 성역 없는 수사를 지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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