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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한-미 원자력협정, 대국민 사기극을 멈추라! / 장정욱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4. 25.

[한겨레신문]

등록 : 2013.04.24 19:22 수정 : 2013.04.24 19:22

한-미 원자력협정의 개정 교섭은 재처리와 농축의 동의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거부로, 현행 협정을 2년간 연장하여 추가 교섭을 한다는 미봉책이 도입됐다. 협정 연장은 이미 예상되고 있었던 만큼 새로운 사실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보수 언론들은 애국심(?)을 부추기면서 미국과 국내의 실무자에 대한 비난의 여론 몰이를 하고 있다. 재처리와 농축에 관한 비과학적·비현실적 내용으로 가득 찬 이들의 주장들이, 교섭 실무자들의 합리적인 사고 판단을 옭매는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혀 반성조차 하지 않는다.

 

심지어 보수 언론들은 거짓 내용을 대본으로 한 ‘대국민 사기극’의 홍보를 더 강화하는 후안무치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대국민 사기극은 핵공학자 및 핵 관련 산업계가 극작가로서 소설의 줄거리를 쓰고, 외교안보 관련 학자 및 연구자, 일부 정치인, 보수 언론들이 각색가로서 대본을 고쳤다. 그리고 감독은 홍보까지 겸한 보수 언론이, 주연배우는 한·미 양국의 협상 실무자가, 그리고 조연 및 엑스트라로 각색가가 다시 출연하고 있었다.

 

필자가 대국민 사기극이라 지칭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정부는 줄곧 우라늄 저농축(20% 이하)과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에 대한 미국의 동의를 요구하였다. 우라늄 저농축으로 저렴한 핵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으며, 핵발전소의 수출 경쟁력 향상에도 기여하고,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로 94~96% 정도의 자원을 재활용할 수 있으며, 저장수조의 포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요구의 배경으로 하였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과학적·경제적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단지 핵마피아들의 희망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보수 언론들이 연일 허위 내용을 진실인 양 보도하는 행태는 대국민 사기극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농축공장의 운영은 규모의 경제 및 해체 비용 등을 고려하면, 수입하는 경우보다 비쌀 수도 있다. 또 가령 저렴한 핵연료의 안정적 공급에 기여하는 경우에도, 연료비는 핵발전소 운영에서 결정적 조건은 아니다. 핵발전소 수출도 건설 비용의 융자 능력 및 안전성이 중요한 결정 요인으로, 핵연료의 안정적 공급은 부차적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 측면에서 국내 수요량의 2~3할 정도의 농축시설을 확보할 여지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핵발전소 추진에 대해 국민들의 의사를 전혀 묻지 않은 채 농축공장의 건설만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려는 정부의 자세는 국민의 이익보다는 핵마피아들의 기득권 확대를 우선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대국민 사기극의 하이라이트는 파이로프로세싱이라는 건식 방식의 재처리가 핵발전소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수조의 포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자원의 높은 재활용률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100년 또는 200년 후에 소듐(나트륨)냉각고속로의 개발 같은 다른 모든 조건들이 완벽하게 실현되어도, 재처리와 핵발전소의 저장수조의 포화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게다가 재활용률도 실질적으로는 높게 보아도 1% 전후로, 재처리에 투입되는 에너지와 공정 중의 손실을 고려하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백보 양보하여 150년 정도 후에 94% 이상의 재활용이 가능하여도, 효율이 높은 다른 에너지원이 개발되어 있을 가능성도 높으며, 또 핵분열 생성물(죽음의 재)이 매일 히로시마 원폭보다 몇 배나 많이 나오는 재처리 공장을 유치할 지역이 과연 있을지도 의문이다.

 

보수 언론들이 국가의 번영과 지속을 최대의 목표로 삼는 집단이라면, 단순히 이익집단의 허위 사실을 전달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실을 조사·분석하여 보도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