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칼럼

[사설] 남북 회담이 잘되려면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6. 9.

등록 : 2013.06.07 19:13 수정 : 2013.06.07 19:13

한겨레

정부가 오는 12일 서울에서 남북 장관급 회담을 열자고 제의한 다음날인 어제 북쪽이 9일 실무접촉을 하자고 응답했다. 회담 개최를 전제로 의제와 장소, 진정성 등에서 탐색 기회를 갖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일정이 촉박해 현안들에 대한 합의를 깔끔하게 이뤄내기 어려울 수 있지만, 양쪽은 모처럼의 대화 기회를 잘 살리도록 노력을 다해야 한다.

 

정부가 경계해야 할 것은 북쪽이 굽히고 들어왔으므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섣부른 판단이다. 이번에 먼저 포괄적 회담을 제의한 것은 북쪽이다. 여기에는 경제에 비중을 두고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적인 고려와 한반도 비핵화를 압박하는 국제 여건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북쪽의 어제 발언처럼 “수년 동안이나 (남북 당국자 회담이) 중단되고 불신이 극도에 이른 현 조건”이 단숨에 사라질 순 없다. 정부는 앞서 제안했던 개성공단 실무회담의 연장선에 장관급 회담을 위치시키고 있지만 두 회담은 성격과 내용에서 큰 차이가 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제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회담은 일단 개성공단 정상화,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6·15 공동선언 및 7·4 공동성명 관련 남북 공동 행사 개최 등 이미 거론된 네 의제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문제의 경우 과거의 잘잘못을 따져 엄격한 조건을 달기보다는 미래지향적 의지를 바탕으로 통 큰 합의를 지향하는 게 효과적이다. 이산가족 상봉은 정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 공동 행사 개최는 정부의 결단만 있으면 가능하므로 정부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들 의제에 대한 큰 틀의 합의를 바탕으로 10·4 정상선언 등 과거 합의를 되살려 의제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장관급 회담이 잘 진행되면 전반적인 한반도 정세를 대화와 협력 분위기로 바꿔나갈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8일(한국시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방법을 두고 진지한 논의를 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뚜렷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성공적인 남북 회담은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대북 대화에 적극 나서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런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북한 역시 핵 보유를 고집할 명분을 잃게 된다. 정부는 이런 구도를 끌고나가는 과정에서 중심적인 구실을 해야 한다.

 

한반도 관련국들에서 모두 새 정권이 들어선 가운데 새 대화가 시작되는 상황이다. 지금과 같은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정부는 이번 회담이 얽히고설킨 매듭을 푸는 계기가 되도록 할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