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 학원 교수 |
기고
1988년에 설치된 헌법재판소가 올해로 25돌을 맞는다. 그간 형식적으로만 존재해왔던 헌법재판이 헌법재판소를 통해 실질적으로 기능하면서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권력 통제에 괄목할 만한 큰 변화가 있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헌법재판소가 내린 한정위헌 결정에 대해 대법원이 또다시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유감스럽게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간의 해묵은 갈등이 또다시 불거졌다.
한정위헌 결정은 법률 규정이 위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 자체는 그대로 두고 당해 법률 규정을 “…라고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고 하는 결정 주문을 뜻한다. 그간 여러 차례 있었던 한정위헌 결정에 대해 대법원은 법률의 해석은 본래 법원의 고유한 권한임을 주장하면서, 이로써 사법권의 본질과 권력분립 원리가 침해된다고 반박해왔다.
입법부인 국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제정한 법률(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무효라고 선언하는 것은 고전적인 권력분립 원리에 비추어보면 대단히 낯선 제도이다. 권력분립 이론을 주창한 몽테스키외가 살았던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한 나라의 법질서 안에서 최고의 규범적 효력을 갖는 헌법, 그리고 그 헌법적 가치를 보장하고 실현하는 헌법재판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헌법국가에서는 기본권 보장을 핵심으로 하는 헌법의 규범력이 법률 등의 하위 규범에 의해서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위헌법률심판, 헌법소원심판 등의 제도를 마련하고 있고, 그 권한을 일반 법원이 아닌 별도의 독립된 헌법재판소에 부여하고 있다.
법률은 그것만으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해석과 결부되어서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다. 구체적인 사건이 전제된 가운데에서의 법률 해석 권한이 통상적으로 법원에 있음은 분명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합헌적인 법률 해석이라고 판단되는 범주 안에서만 그러하다. 만일 법원이 행하는 특정한 법률 해석이 상위 규범인 헌법이 예정하고 추구하는 가치에 반한다면, 국민의 권리 보장 및 헌법적 가치 실현을 위해 헌법재판소로서는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는 입법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위헌법률심판에 내재하는 본질적인 내용이다.
나아가 구체적인 사건에서 법률을 해석·적용하는 사법부의 재판, 곧 사법권력의 행사도 권력분립 원리상 마땅히 통제되어야 할 국가권력임은 자명하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행해졌던 다수의 그릇된 판결들이 민주화 이후의 국면에서 재심 등을 통해 번복됨으로써 사법부가 뒤늦게나마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청산하는 작업은 한편 바람직하지만, 다른 한편 그 자체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억울한 처지에서 수십년을 기다려온 재판 당사자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현행 헌법에서 헌법재판을 새로이 마련하면서 기본권 보장과 권력 통제에 더욱 충실을 기하고자 했던 헌법 개정권자인 국민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입법부를 통한 법률적 구체화의 과정에서 다소 미비점이 남겨졌다. 특히 사법권력의 행사로서 전형적인 국가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하는 법원의 판결을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배제시킴으로써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헌정사상 최초로 도입된 헌법소원심판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따라서 명시적인 법적 근거 없이도 당연히 인정되는 것이지만 그간의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란을 종식시키는 의미에서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분명히 함과 아울러 법원의 재판을 통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구제하기 위한 재판소원을 헌법재판소법의 개정을 통해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한정위헌 결정을 둘러싸고 금번에 다시 재연된 논란과 같이 대법원이 최고사법기관으로서의 위상에 연연해서 헌법재판에 대해 시비를 걸기보다는 기본권 보장 및 권력 통제를 위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서로 경쟁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한다. 이런 경쟁을 통해 권리 보호 기관으로서 누가 국민의 가슴속에 더 크게 자리 잡느냐는 궁극적으로 국민이 판단할 몫이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 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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