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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유산' 등재 본격 추진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1. 23.

조선의 사절단이 걸었던 길, 세계인이 즐겨 찾는 길 되나

   
지난달 27일 부산 동구 범일동 조선통신사 역사관을 찾은 일본 대학생들이 한국과 일본 지도를 보며 조선통신사의 이동 경로를 살피고 있다.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 韓·日, 현재의 행렬 재현을 넘어
- 세계적인 문화브랜드 조성 나서

- 부산문화재단, 유적지 탐방 행사
- 日과 예술가 레지던시 협력 이어
- 10월 부산서 등재 위한 심포지엄

- 성사땐 양국간 교류 활성화 물론
-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도 큰 도움

조선통신사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려 부산의 문화브랜드로 키우려는 움직임(본지 지난 4월 25일 자 3면 보도)이 속도를 내고 있다. 남송우 부산문화재단 대표는 30일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후 신뢰를 기반으로 한일 문화예술 교류와 평화, 선린우호의 콘텐츠를 담고 있다"며 "재단은 조선통신사가 거쳤던 일본 도시의 모임인 '조선통신사 연지연락협의회'와 공동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 양국에서 이루어지는 행렬 재현에서 벗어나 한일 문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비롯한 다문화 시대 평화와 공존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재조명하는 것이 관건으로 보인다.

재단은 이를 위해 오는 10월 19일 부산시청 12층 국제회의실에서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심포지엄'을 열 계획이다. 특히 발트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의 유네스코 위원이 참석해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발트의 길(노래혁명길)'에 관한 사례를 주제 발표할 예정이다. 하루 앞서 10월 18일 같은 장소에서 '조선통신사 연고도시 관련 사례 포럼'을 개최한다. 재단은 이와 함께 문화재청을 비롯한 관련 기관을 찾아가 등재를 위한 여론 조성에 나섰다.

■현재적 의미 찾아라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국제신문DB
조선통신사 하면 행렬 재현을 떠올리며 다소 식상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부산 시민이 적지 않다. 조선통신사의 현재적 의미가 재조명되지 않아서다. 재단은 400년 전 조선통신사(1607~1811년)를 전쟁의 갈등을 딛고 국제 문화교류의 효시라는 점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재단은 이런 점에 착안해 기존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을 넘어 문화콘텐츠로 살리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꾀하고 있다. 지난달 23~26일 부산지역 중고생 70명이 오사카 교토 등 간사이 지역 조선통신사 유적지를 탐방하고 전통 공예를 체험하는 '조선통신사 청소년 역사아트 캠프'를 부산시교육청과 처음 마련했다. 아울러 대마도, 시모노세키, 요코하마 등 조선통신사가 거쳤던 일본 6개 도시에 부산의 예술가를 파견해 창작활동을 하는 '조선통신사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처음 도입했다. 일본의 반응이 더 적극적이다. 도모노우라 지역은 유치원 건물을 무상으로 임대받아 부산지역 화가 12명에게 작업 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다.

주일본 한국대사관이 선발한 일본 대학생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리포터단 21명은 지난달 24~28일 '조선통신사의 길을 따라서'라는 주제로 부산 동구 범일동 조선통신사 역사관과 최초의 조선통신사 이예 사당이 있는 울산 석계서원 등을 찾았다. 일본 이누이 히로아키(49) 영화감독은 한국 배우 윤태영을 캐스팅해 한일 합작 다큐멘터리 영화 '최초의 조선통신사 이예'를 제작하고 있다. 이 영화는 오는 12월 개봉될 예정이다.

■10월 포럼·심포지엄 통해 세계적 이슈로

재단은 오는 10월 18, 19일 이틀에 걸쳐 조선통신사 사행길과 바닷길에 관련한 역사문화유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한국, 일본, 중국, 발트 삼국의 유네스코 위원을 초빙해 국제 포럼과 심포지엄을 잇달아 열기로 했다.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전문가 의견을 공유하고, 세계문화유산 등재기준인 완전성, 진정성, 뛰어난 보편적 가치(OUV) 내재 여부를 탐색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19일 심포지엄에서 니사무라 동경대 교수는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성과 한일 네트워킹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관해 주제 발표할 예정이다. 18일 포럼에서는 일본 내 조선통신사와 관련한 다양한 문화교류 사례가 소개된다. 카와고에 지역은 조선통신사가 경유한 지역이 아닌데도 다른 곳에서 통신사 행렬을 지켜보고 감동한 주민이 수백 년째 행렬을 재현하고 있다. 차재근 재단 문예진흥실장은 "카와고에에서는 정사와 부사가 얼마씩 내는 식으로 기부를 받아 행정기관의 재정 지원 없이도 행렬을 재현해 시민주도형 축제의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노미찌 지역은 조선통신사 선박의 정박지로, 돛을 만드는 범포를 매뉴얼화해 현대적 옷감을 생산하고 있다.

■기대 효과와 향후 과제

조선통신사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조선통신사 축제는 '한일 문화의 실크로드'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우선 양국 문화·관광·경제 교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도 상당한 파급효과를 내 부산의 도시 브랜드 가치도 덩달아 올라갈 것으로 기대된다. 발트 3국의 '발트의 길'은 200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세계적인 문화관광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실제 등재가 이루어지기까지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재단과 일본 조선통신사 연지연락협의회가 부산시를 비롯한 일본 지자체 지원과 협조를 얻어내야 하고, 유네스코 한국 및 일본위원회의 예비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이어 유네스코 본부의 서류 심사와 실사를 거쳐야 한다. 상당한 기간이 걸리는 만큼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재단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세계무형문화유산·세계유산(역사유적) 등 세 분야에 걸쳐 등재를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양국의 정치적 기류도 변수다. 하지만 조선통신사가 임진왜란 이후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평화와 문화 교류의 싹을 틔웠다는 점에서 유네스코 등재는 '가깝고도 먼' 양국의 벽을 허무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견해와 달리 양국의 지지를 얻기 어렵지 않다는 뜻이다.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조선통신사는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사절을 말한다. 통신이란 신의를 나눈다는 의미로, 조선통신사를 통한 교류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 조선과 일본의 평화와 선린우호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간 조선통신사는 일본을 12회 걸쳐 방문했다. 조선통신사는 정사, 부사, 종사관 등 400~500명에 이르는 대사절단이다. 조선의 수도 한양에서 출발해 일본의 수도 에도까지 가는 데 반년 이상 걸렸다. 통신사는 일본의 많은 문인과 필담을 나누고 노래와 술잔을 주고받는 등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통신사 일행의 최종 출발지였던 부산은 일행의 접대와 특산물과 예단 모집, 해신제 준비 등 통신사 파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 발트의 길(노래혁명길)이란

- 소련 점령 저항한 600㎞ 인간 띠

   
발트의 길(노래혁명길·사진)은 1989년 8월 23일 오후 7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3국의 시민 200만 명이 600㎞ 길이의 인간 띠를 만들어 노래를 부르며 무혈혁명으로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역사적 길을 말한다.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라트비아 수도 리가를 거쳐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이르는, 인간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긴 띠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갔다가 다시 절반 정도 되돌아올 수 있는 거리다. 발트 3국 전체 인구 800만 명 중 25%가 인간 띠 형성에 참여했다.

   
손을 맞잡은 시민은 15분간 '자유'를 외쳤다. 에스토니아어로 '바바두스(vabadus)', 라트비아어로 '브리비바(briviba)', 리투아니아어로 '라이스베스(laisves)'. 그 시간에 맞춰 발트 3국의 모든 도시와 마을 교회와 성당에서는 종을 울려댔다. 서유럽의 TV방송이 비행기를 타고 공중에서 인간 띠의 생생한 모습을 중계방송하자 세계인들은 발트 3국에 응원을 보냈다. 당시 소련은 세계의 여론에 밀려 무력 진압을 하지 못했다.

발트의 길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리투아니아가 1990년 3월 11일 독립을 선언했고, 1991년 마침내 소련으로부터 3국 모두 독립을 인정받았다. 지구를 감싸는 띠를 만드는 장면은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에 나올 정도로 평화와 인류 화합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발트의 길이 성공하자 몰도바, 우크라이나 같은 소련 내 다른 공화국에서도 억압에 저항하는 인간 띠를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촛불집회나 4대 강 반대행사 때 부분적으로 인간 띠를 만드는 퍼포먼스가 행해지고 있다. 발트 3국은 노래혁명길에 관한 자료와 유적을 모아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