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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조선통신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하> 문화 콘텐츠 살리려면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1. 23.

양국 국민·예술가 문화 교류 활성화 … 체계적 유산 관리 나서야

   
- 부산문화재단 레지던시 사업
- 통신사들 일본 경유지역에
- 시인·미술작가 등 9명 파견
- 양국간 우정 쌓으며 창작 등
- '현대판 조선통신사' 역할

- 통신사 주 활동무대였던 日
- 유산 많고 보존도 잘 됐지만
- 한국은 산업화· 현대화에
- 이동 경로마저 옛모습 잃어
- 국내 사업의 걸림돌로 꼽혀

조선통신사는 문화 콘텐츠의 보고다. 400년 전 한일 양국의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상생 발전한 국제 문화 교류와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원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에 맞춰 조선통신사는 그동안 다소 식상했던 행렬 재현 방식에서 벗어나 국제 문화 교류와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런 문화 콘텐츠의 보고로서 조선통신사의 현재적 의미를 끄집어내지 못하면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불가능하다.

양국 국민이 다문화시대를 맞아 조선통신사에 관한 문화 콘텐츠가 남아있는 곳을 서로 찾아다니며 평화와 문화 공존의 가치를 체험하고 배우고 있다. 조선통신사가 21세기 문화의 관점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는 셈이다.

■과거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부산문화재단은 지난해 처음 6000만 원의 사업비로 400년 전 조선통신사가 경유했던 일본 지역에 머물며 조선통신사를 매개로 창작활동을 하고자 하는 부산 지역 문화예술가를 공모해 파견하는 '레지던시 원류를 찾아서' 사업을 벌였다. 일본 대마도, 카미노세키, 도모노우라, 시즈오카현 이토우, 요코하마 등 5곳에 9명을 파견했다. 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일본 11개 도시가 참여 의사를 밝힐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벼랑 위의 포뇨'의 배경이 됐던 도모노우라에서 24일간 머문 최정란 시인은 "과거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는 느낌이 들었다. 서로의 문화를 존중, 배려, 이해하고 친구가 되는 과정을 체험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카미노세키에서 28일간 체류한 이은주 시인은 "통신사 일행이 머물렀던 객관 오차야의 옛터를 둘러보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는 재미에 빠졌다"며 "당시 마을 분위기를 떠올려 보면 새로운 조선 문화를 접하는 즐거움 못지않게 500명에 가까운 통신사 일행을 맞이하는 데 따른 경제적 어려움도 겪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마도에서 29일간 머문 왕덕경 미술작가는 우리나라의 칡과 비슷한 넝쿨 식물인 '카즈라'라는 현지 식물을 재료로 삼아 작품을 만들었다. 재단은 올해 5000만 원의 사업비를 확보해 조선통신사 레지던지 프로그램을 이어가기로 했다.

■조선통신사 필담(筆談)은 현재 진행형

카미노세키에서 28일간 체류한 배길남 소설가는 일본어를 제대로 구사할 줄 몰라 휴대전화를 이용한 필담(筆談)으로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했다. 마치 400년 전 조선통신사가 통역을 거치지 않고 일본 사람과 붓으로 한자를 써서 대화를 나눈 것처럼. 일본에는 조선통신사와 일본 사람이 나눈 필담을 모은 '필담창화집'이 수백 권 남아있다.

배 소설가는 스마트폰의 번역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일본으로 갔다. 카미노세키 교육위원회 직원과 술자리에 이은 노래방 자리. 누군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틀어놓고 목청껏 부르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일본인의 휴대전화 번역 앱에는 강력한 필담이 등장했다. "저 사람은 언제 적 노랜데 저런 걸 부를까요? 배상! 신곡 하나 부탁합니다."

스마트폰시대에 걸맞게 한일 국민의 필담이 진화하고 있다.

■양국 유산의 비대칭성

유네스코에 등재할 조선통신사 문화유산이 한국보다 일본에 많아 국내 사업의 걸림돌로 꼽힌다.

조선통신사의 활동무대가 일본인 데다 일본은 그 유산을 잘 보존해왔다. 하지만 한국은 관련 문화유산이 적은 데다 서울~부산 이동 경로마저 산업화와 도시화로 옛 모습을 잃어버렸다.

최정란 시인은 "조선통신사의 숙소였던 후쿠젠지 대조루에는 통신사가 남긴 글귀와 현판이 선명하게 남아있어 남의 나라에서 보존·계승되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발견했다"고 털어놓았다.

남송우 부산문화재단 대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조선통신사가 거쳤던 길을 따라 지역별 유산을 발굴·복원하고, 남아 있는 유산을 관리·보존하면 비대칭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며 "조선통신사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 제주 올레길을 능가하는 세계적 '문화 순례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철저한 고증거쳐 통신사선 복원

■ 부산의 통신사 관련 시설은

- 영도구 국립해양박물관에 전시중
- 동구 역사관도 日 관광객 증가세

   
지난 19일 부산 동구 범일동 조선통신사역사관을 찾은 시민이 자녀와 함께 통신사의 이동 경로를 살펴보고 있다. 이진우 인턴기자
조선통신사는 조선의 왕이 일본의 막부 장군에게 파견한 외교 사절인 까닭에 교류의 현장은 일본 국토였다. 그래서 국내에 통신사 관련 유적은 흔치 않다. 우리가 간직한 조선통신사의 기억과 흔적은 주로 사행록, 필담집, 서화 등 기록 유산에 한정된다.

기록유산도 소중한 교류의 흔적임은 분명하지만, 조선통신사의 흔적을 찾는 일본 관광객에게 주는 생동감은 부족하다. 그러나 부산에는 이 아쉬움을 채워줄 만한 통신사 관련 시설이 있다. 영도구 동삼동 국립해양박물관과 동구 범일동 조선통신사역사관이다.

국립해양박물관은 조선통신사 관련 코너를 따로 만들어놨다. 해로를 통한 문화 교류라는 점에서 해양박물관의 중요한 전시 주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개관한 해양박물관에는 매달 100여 명 정도의 일본인이 방문하고 있다. 조선통신사 다큐멘터리 촬영팀도 해양박물관을 방문했다.

이들의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전시품은 실제 크기의 2분의 1로 복원한 조선통신사 선박이다. 현재 복원된 것은 사절단의 대표인 정사가 이용한 정사선이다. 계미수사록, 증정교린지, 헌성유고 등 문헌기록을 참고하여 조선 장인을 비롯한 각계 전문가의 자문회의를 거쳐 복원됐다. 해양박물관 손경림 전시운영2팀장은 "일본인 방문객에게 통신사선의 복원 과정을 설명하면, 한일 교류의 흔적을 철저히 고증했다는 점에 감탄한다. 자국의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유물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어서 양국이 가깝다는 사실이 실감난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전했다.

조선통신사역사관도 부산 방문 일본인이 자주 들르는 곳이다. 역사관 측은 "매일 1팀 이상의 일본인이 꼭 방문한다. 최근에는 단체 관광객도 증가세다. 지난해 약 1200명의 일본인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역사관은 전시보다 교육에 집중한다. 진품 유물을 상설 전시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기를 활용해 조선통신사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또 레지던시 교류에 참여한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등 현재적 가치 부여에 주목하고 있다. 역사관 관계자는 "조선통신사는 한일 간 문화교류의 원조다. 일본인들은 조선통신사를 주제로 한 기념관이 생겼다는 사실에 감동한다. 일본 내 반한 감정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내면서 '일부 우익의 이야기일 뿐이다. 한국인들이 절대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