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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유레카] 통비법의 두 얼굴 / 김이택[한겨레]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2. 18.

등록 : 2013.02.17 19:20 수정 : 2013.02.17 19:20

여야가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제정과 안기부법 개정에 합의한 1993년 12월7일 조만후 안기부장 특보가 국회로 헐레벌떡 달려왔다. 민자당 지도부를 붙들고 안기부 기능을 무력화시킬 법이라며 강력히 항의했으나 예산안 처리를 볼모로 한 민주당의 버티기 작전에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법은 ‘정보정치’에 족쇄를 채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불법도청 엄벌을 뼈대로 한 통비법에 당시 안기부가 그토록 저항했던 속내는 나중에 드러났다. 중앙정보부 이래 요인에 대한 불법도청을 해온 안기부는 법 제정 뒤에도 이른바 ‘미림팀’을 통해 거의 매일 각계 인사들을 닥치는 대로 미행·도청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뒤 면직된 미림팀장 공운영은 재미동포 박인회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도청테이프 중 일부를 넘겼다. 우여곡절 끝에 2005년 초 문화방송 이상호 기자 손에 들어간 도청 녹취록 ‘엑스파일’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특히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이 만나 여야 대선 후보 자금지원과 검찰 간부들에 대한 ‘떡값’ 전달 방안을 논의한 대화록이 그대로 보도되면서 홍 당시 주미대사가 물러나고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황당하게도 검사들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과 기자들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고 ‘뇌물’을 주고받은 혐의를 받던 삼성가 두 사람과 검사들은 모두 빠졌다. 결국 노 의원은 기소 6년 만인 지난주 의원직을 잃었다.

 

애초 정보·수사기관의 마구잡이 도청을 막기 위해 만든 통비법이 최근엔 내부고발자나 언론인·정치인들의 족쇄를 채우는 도구가 돼버렸다. 법 취지를 곡해한 검찰과 법원의 잘못이 크다. 또 공익 목적의 공개 행위도 예외 없이 엄벌하도록 하는 등 법 제정 당시 예상치 못한 대목들은 고칠 때가 됐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