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해야 하나' 묻지만 말고 '우리를 따르라' 리더십 보일때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2013-03-26 20:15:42
- / 본지 26면
대선 패배 이후 좌표 설정을 놓고 갈팡질팡하는 야권, 그중에서도 리더십 부재로 부심하는 민주당의 모습은 애잔하기까지 하다. 박근혜 새 정부가 인사 헛발질로 헤매는 형국이라면 민주당은 존재감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안철수 신당의 등장을 가상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10% 초반대로 떨어진 것이 현재의 민주당 신세다. 보수세력과의 야합적 연대 없이 48%의 대선 득표율을 올린 민주당인데 어찌된 일일까. 비록 집권 문턱에서 좌절했지만 그 정도 득표율이라면 대안세력으로서 국민의 희망이 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하지만 집권 초반 성적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새 정부의 지지부진에도 민주당은 반사이익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다.
왜 민주당인지, 무엇이 민주당인지를 다시 생각해 본다. 가까운 기억으로는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집권시기, 먼 기억으로는 공화당에서 5공까지 YS, DJ(김영삼, 김대중)가 시국을 쥐락펴락하던 신민당의 활약상, 더 먼 기억으로는 자유당 독재에 맞서 싸우던 신생국 민주주의의 역사가 떠오른다. 민주당은 분명 친일, 친미, 군부, 재벌 세력이 어우러진 지배 카르텔에 맞서 민주 공화국의 가치를 수호해 왔던 정당이다. 중산층, 서민의 정당이고자 했고 기득권층의 특권과 반칙에 맞서 싸웠던 정당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같은 국민 외면에 직면해 있는 것일까.
사방에서 민주당에 대한 비난과 멸시의 언사를 날리지만 어쩌면 본질문제는 따로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자유로부터의 도피' 현상이다. '자유로…'는 에리히 프롬이 쓴 현대의 고전이다. 속박에서 벗어난 근대인이 자유를 얻는 대신 개인의 고립과 무기력을 초래했다는 것. 중세의 노예적 타성을 벗어나 자유인이 되자 감당할 수 없는 불안을 느끼게 되었고 그것이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를 불러왔다는 것이 책의 요지다. 자유를 얻자 새로운 불안과 공포에 직면한 근대 독일인처럼 절대빈곤으로부터 해방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획득하자 감당할 수 없는 불안감에 직면한 것이 오늘 한국인의 초상은 아닐까. 그래서 설사 새누리당이 좀 부패했을지라도, 박근혜 정부에서 발탁되는 주요인사가 노인들이고 과거회귀적일지라도 차라리 강력한 군주의 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들을 품는 것이 아닐까.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안정감을 주지 못했고 사익추구와 특권강화에 매진한 이명박 정부는 분노를 자아냈다. 아무리 민주적 가치 운운해도 사람들은 민주당에 눈길을 줄 여력이 없어 보인다. 그보다는 박정희 이미지에 기댄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하고 효율적인 통치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커 보인다.
5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 당대표 출마자의 면면이 드러나고 있다. 새 지도부가 희망의 메시지를 주지 못한다면 표류하는 야권의 형세는 장기화될 것이다. 민주당은 더는 쇄신타령을 하지 말라. 대선 때 뜻 모를 쇄신의 암호를 푼답시고 이해찬 당대표를 퇴진시켰다가 '그런 요구가 아닌데요?' 하는 기막힌 조롱만 들었던 경험을 되새겨야 한다.
쇄신의 큰 그림은 '2013년 체제론'에 이미 다 나와 있다. 선거패배로 그 용어가 빛을 잃었지만 보스중심의 지역주의 타파라는, 복지사회와 경제정의 실현이라는, 남북 간 평화정착이라는 지향점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울러 국민들을 향해 '어떻게 할까요?' 식으로 여론을 추종하는 겸손모드를 버리라. 혼돈에 빠진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뿐이다. 되지도 않을 일치단결조차 꿈꾸지 말라. 느슨한 정파연대로 가동되는 정당 시스템에 국민들은 충분히 익숙하고 큰 물살이 닥쳐오면 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잘 알고 있다. 앞으로 기대하는 민주당의 모습을 구어체로 풀자면 '우리가 이렇게 하겠으니 따라와 주십시오' 하는 단호함이다. 정당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오로지 박근혜 한 인물만 떠오르는 집권세력과 대비될 수 있어야 한다. 민주당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 정당인지, 명료하게 갈 길을 가는 모습이 부각되면 희망이 있다. 민주당이여, 불안을 껴안고 불안 속에서 길을 찾으라.
시인·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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