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기금이 노인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공약과 마찬가지로 규모나 지원 대상이 크게 줄었다. 대선 때 18조원의 기금을 공약했는데 어제 금융위원회는 우선 1조5000억원으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지원 대상자도 최대 322만명에서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니 표를 위한 사탕발림이 따로 없다. 금융위가 기준을 정했다고 하나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도덕적 해이가 없도록 하려면 유의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민행복기금 지원 대상자는 1억원 이하 채무자로 6개월 이상 연체중인 사람으로 정해졌다. 최대 50%(기초수급자는 70%)까지 빚을 덜어주고 최장 10년까지 원리금을 분할 상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연소득 4000만원 이하이면서 20% 이상 고금리 대출을 받은 뒤 6개월 이상 상환중인 사람도 대상에 포함된다. 또 학자금 대출을 받은 뒤 6개월 이상 연체중인 사람도 채무 탕감과 상환기간 연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본 재원이 적어 지원 대상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는 실제 채무 조정 대상자 규모를 32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10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는 경제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이지만 빚은 채무자와 채권자의 문제로 국가가 나서서 갚아준다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대부업체들이 국민행복기금으로 돈이 풀리니 돈 빌려 쓰라는 식의 대출 영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운영자 선정이며 채무 조정 대상자의 선별이 더욱 정교해야 한다. 고의적 연체자나 고소득자 등이 제외돼야 함은 물론이다. 형평성 논란에서 벗어나려면 행복기금 출범 전에 생계형 신용불량자를 가려내는 시스템을 확실히 구축해야 한다.
가계부채 문제는 은행이나 카드 회사에서 채무자의 상환 능력과 신용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대출해 수익을 챙겨온 탓이 적지 않은 만큼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민행복기금 지원 대상자 대부분은 저소득층으로 빚을 일시적으로 줄여준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탕감을 받더라도 중도에 연체를 해버리면 다시 채무가 부과되기 때문에 자활을 돕는 정책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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