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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한겨레사설] ‘정치’ 없는 대통령의 위험한 질주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3. 5.

등록 : 2013.03.04 19:16 수정 : 2013.03.05 10:06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대치 와중에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최대 쟁점인 방송진흥 핵심 기능을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하는 담화였다. 박 대통령은 “이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라는 말로 강력한 원안 고수 의지를 내비쳤다.

 

박 대통령의 어제 담화는 취임 일주일 만의 첫 대국민 발표치고는 너무도 어색하고 생경해서 민망할 지경이다. 굳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가며 야당의 국정 발목 잡기를 비판하는 대목에선 비장하다 못해 섬뜩함마저 느껴졌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숨길 수 없는 ‘화’가 화면을 타고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해지는 듯해 안타깝기까지 했다.

 

1 0여분에 걸친 담화 곳곳에는 ‘내가 옳으니 무조건 따르라’는 식의 일방통행식 독선이 배어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문제와 관련해 박 대통령은 “방송 장악은 할 의도도 없고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고, 안보 위기와 경제 위기를 거론하면서 “좀더 전향적인 방법으로 협력해달라”고 야당을 압박했다. 자신은 사심이 없고 올바른데 왜 몰라주느냐는 식이다. 정치는 협상과 타협으로 하는 것이지 진정성만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나만 옳다고 우기면 그것이 독재요 아집이다.

 

박 대통령이 정부조직법이 통과되지 못한 것을 야당의 일방적 발목 잡기로 돌린 것도 문제다. 부실 인선과 지각 인선으로 정부 출범을 지연시킨 장본인은 박 대통령이다. 어제 사퇴한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역시 부실 인선이 빚은 참사다. 김 후보자는 사퇴하면서 “정치권 난맥상”을 이유로 들었다는데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정도의 정치적 우여곡절로 장관직을 내놓을 정도면 차라리 맡으려 들지 않았어야 한다. 뭔가 밝히기 어려운 곡절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외국의 유수한 인재를 영입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기본적인 도덕성과 정치적 건강성이 담보돼야 한다.

 

박 대통령의 집권 초 행태는 정치가 실종됐다는 점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 초와 닮았다. 이 전 대통령은 대선 승리에 취해 고·소·영 인사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노 전 대통령은 무슨 일만 있으면 춘추관을 찾아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설명하기 바빴다. 이 전 대통령은 촛불시위로, 노 전 대통령은 재신임과 탄핵 파문으로 집권 초에 된서리를 맞았다.

 

박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집권 초반 의욕이 앞서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독주하다가 낭패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야당은 대통령을 견제하라고 있는 것이다. 야당이 대통령 뜻대로 모두 협조해 준다면 정치가 무슨 필요가 있나. 야당을 설득하고 대화하고 타협하는 상생의 정치는 말보다 실천하기가 백배는 어렵다.

박 대통령이 미래창조과학부의 원안을 관철하고 싶다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야당에 일방적으로 양보하라고 하면 곤란하다. 정부조직법이 아니더라도 사퇴 압력을 받는 장관 후보자 문제나, 다른 입법 사항들을 놓고 폭넓게 협상할 수 있는 방안이 얼마든지 있다. 초보 대통령이 야당과 대결하며 기싸움이나 하다가는 집권 초반을 허송세월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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