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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건물주 횡포에 상인보호 못하는 ‘임대차보호법’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5. 29.

등록 : 2013.05.28 20:28 수정 : 2013.05.29 10:21

 

 

보증금 5배나 올리고
재건축 핑계로 쫓아내

#장면1/ 지난달 서울 종로구 무교동에서 성업중이던 중국음식점이 건물주의 횡포에 못 이겨 폐업하는 일이 발생했다. 음식점 주인은 가게 입구에 “종전에는 보증금 4000만원에 월세 650만원이었으나 보증금 2억원에 월세 1550만원으로 임대료가 올라 부득이 4월30일까지 영업을 한다”는 폐업 안내문을 내걸었다. 이 안내문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게재됐다.

#장면2/ 서울 신사동의 한 상가건물 지하 1층~지상 1층에서 의류점, 음식점 등을 운영중인 점포 세입자 6명은 최근 건물을 매입한 새 건물주로부터 내년 4월까지 한꺼번에 점포를 비워달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건물주는 ‘낡은 상가를 철거하고 새로 지어 본인이 사용할 계획’이라는 내용증명을 보낸 뒤 세입자들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환산보증금 임대료 현실과 안맞아
철거 땐 세입자 계약연장 청구못해
피해자들 모여 관련법 개정 촉구

 

28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는 건물 임대차 계약관계의 ‘을’인 상가 세입자들이 건물주인 ‘갑’의 횡포를 제도적으로 막아줄 것을 호소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피해사례 보고대회’가 열렸다. 이날 보고대회 자리에는 최근 건물을 매입한 유명 연예인한테서 퇴거 통보를 받아 논란의 중심에 섰던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곱창집 주인을 비롯해 건물주들의 부당한 처사로 고통을 겪고 있는 세입자 5명이 참석해 피해 사례를 발표했다.

환산보증금

세입자가 임대인에게 매달 지급하는 차임(월세)에 일정한 이자율을 적용해 보증금으로 환산한 금액을 뜻한다. 현행법은 월단위 기준 차임에 100을 곱해, 월세가 100만원이면 환산보증금은 1억 원이 된다.

많은 상가 세입자들이 흔히 피해를 보는 사례는 건물주의 임대료 인상으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상가에서 쫓겨나는 경우다.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일정액의 보증금 이하 임차인에게 최대 5년간의 계약기간을 보장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이 법이 적용되는 환산보증금 기준은 3억원 이하로, 예를 들어 보증금이 5000만원인 경우에는 월세가 250만원(월이율 1% 적용, 환산보증금 2억5000만원) 이하라야 한다.

 

하지만 상가 세입자들은 이런 보증금 제한 규정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최근 수년에 걸친 임대료 급등으로 현재 서울시내 상가의 4분의 1 정도만 보호 대상이 되는데다, 건물주가 상가 임대료를 올리면 현재 보호 대상인 세입자도 언제든 사각지대로 밀려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사동 곱창집 주인 서아무개 대표는 “건물주의 선의에 기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임차인들이 마음 편히 장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건물주가 상가건물 대부분 또는 전부를 철거하거나 재건축하는 경우에는 세입자가 계약 연장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법규정도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임차인으로서는 재건축을 목적으로 건물이 매매되더라도 손을 쓸 도리가 없고, 일부 악덕 건물주가 세입자들을 내쫓기 위해 재건축을 악용하는 경우에도 대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밖에 보증금과 월 임대료 대신 임차인이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건물주에게 수수료로 지불하는 이른바 ‘수수료 매장’의 경우,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도 또다른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 잠실롯데월드 지하 3층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화장품과 액세서리를 팔던 18개 점포 주인들이 건물주인 호텔롯데 쪽의 리뉴얼 공사에 따라 계약을 해지당하고 쫓겨날 처지에 몰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문가들은 건물주의 일방적인 계약 해지와 과도한 임대료 인상을 막을 수 있도록 관련법을 하루빨리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으로 인한 건물주의 계약갱신 거절 사유를 노후·붕괴 위험에 따른 재건축 등 좀더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성도 제기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김남주 변호사는 “환산보증금 3억원 이상도 대부분 영세상인에 해당하기 때문에 일부 기업형 상가 등을 제외한 모든 임차상인을 보호하는 것이 법 취지에 맞는다. 상가 임대차 계약기간도 현행 최장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