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
참 기구한 운명이다.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기에 세 번씩, 아니 네 번씩이나 이렇게 정치적으로 치도곤을 당하는지 모르겠다.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 그것도 합법적으로 당선된 사람이 이렇게 매도당한 예가 또 있으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사람을 이렇게 폄훼하는 경우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비록 명부에 있다 한들 얼마나 힘들고 견디기 힘들까 싶다.
그는 서슬 퍼렇다는 대통령 임기 초반일 때부터 수모를 당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멀쩡한 대통령을 다수의 힘으로 밀어냈다. 탄핵을 밀어붙인 그들은 사실 처음부터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기 싫었다. 1997년에야 아이엠에프(IMF)라는 미증유의 국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자위할 수 있었지만 2002년 그들은 도저히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탄핵에 나섰다. 그러나 다수의 횡포에 대해 민심은 회초리를 들고 호되게 질책했다. 2004년 총선에서 사상 처음으로 의회 권력의 교체가 이뤄졌다.
두 번째는 정권교체 후 검찰 수사였다. 그들은 고향 마을에 내려가 농부로서, 동네의 이웃 할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는 그를 욕보이고자 작정했다. 끝없이 확인되지 않은 혐의를 유포하고 비난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창조 정치’를 펼쳤다. 급기야 검찰청사 앞 포토라인에 세워 조롱하고 야유하면서 희희낙락했다. 집권 과정에서부터 비리 의혹을 사더니 재임 중엔 측근들의 부정부패 퍼레이드를 펼친 그들이고 보면 과연 무슨 낯으로 그런 패악을 저질렀는지 그 배짱이 부러울 따름이다. 이번에도 역시 그들은 민심의 가혹한 매질에 무릎을 꺾어야 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그들은 천안함 사태에도 불구하고 패배하고 말았다.
이쯤 되면 그만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12년 대선에서 그들은 그에 대한 반감을 선거의 기본 프레임으로 삼았다. 실패한 정권의 2인자가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고 힐난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북방한계선(NLL)을 이슈로 삼아 아예 그를 친북 인사로 규정함으로써 과거사 논란과 이명박 정부의 실패가 주는 부담에서 벗어났다.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그는 영토를 팔아먹은 대통령, 즉 매국노였다. 아무리 정치가 비정한 것이지만 그래도 금도라는 게 있는데,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로써 그들은 무려 세 번이나 그를 정치적으로 욕보였다.
선거가 끝난 지금, 그는 또다시 현실정치의 장으로 불려나왔다. 지금 이 나라는 국정원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여부를 두고 시끄럽다. 일부에서 말하듯 여당으로선 이미 약속한 국정조사를 그냥 뒤집기 부끄러워서인지 몰라도 고인이 된 지 4년이나 지난 그를 다시 정쟁의 마당으로 끌어내는 건 아무래도 과해 보인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그가 북방한계선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발언했는지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진의를 인정해도 이런 식으로 제기하는 것은 누가 봐도 치졸하다. 그는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을 지냈다. 그럼에도 그는 생전에도 그랬고 사후에도 고난이 끊이지 않는다. 고인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명복은 고사하고 영면도 사치인 듯하다. 짠하고 안쓰럽다. 자신으로 인해 여러 사람이 고통받는 걸 걱정하며 남에게 짐이 되기 싫어 홀연히 목숨을 던졌던 그였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했던 그다. 그런 그였으니 그들의 이런 행태에도 담배 한 대 얻어 피우면서 허허 웃으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운명이다.”
그는 자신에 대한 미움도 애정도 다 털어냈으리라. 보수도 진보도 모두 포용하고 있으리라. 자신에 대한 숭앙도 폄훼도 모두 뛰어넘었으리라. 2013년 6월, 그가 많이 그립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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