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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편집국에서] MB정권의 거짓말까지 승계할 텐가 / 임석규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7. 15.

등록 : 2013.07.14 19:09 수정 : 2013.07.14 21:09

 

 

임석규 정치·사회 에디터

‘한 나라의 대사란 모국의 선을 위해 거짓말을 하라고 외국에 보내진 정직한 사람’이라고 17세기 영국의 외교관 헨리 워튼은 말했다. 국가간 외교에선 자국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타국에 대한 ‘전략적 거짓말’은 종종 애국으로 칭송받기도 한다. 그런데 거짓말의 대상이 자국 국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통령은 수십조원의 예산을 들인 국책사업에 대해 천연덕스럽게 국민을 속인다. 장관들은 대통령의 뜻을 충실히 이행하며 국민에게 거짓말을 일삼고 건설업체들의 담합을 부추기기도 한다. 감사원장과 공정거래위원회장은 이런 일을 감시하고 적발하기는커녕 눈감아주고 귀닫아주며 거짓의 은폐에 조력한다. 호텔 안가에서 5만원짜리가 빼곡히 들어간 건설업자의 포도주 상자를 받아 챙긴 국정원장은 검찰에 출석할 때 쏘나타 차량을 타고 나타나 청렴하다고 우기려 한다. 이제 보니 그가 대선에서 대북 정보인력을 빼내 야당 후보 댓글공작에 투입한 것은 정권이 교체되지 않아야 이런 엽기행각이 들통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게 아닌가 싶다.

 

다른 나라 얘기였으면 좋겠지만 그렇게도 ‘국격’을 내세우던 이명박 정권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야당 주장이 아니라 이 정권을 승계한 박근혜 정부의 검찰과 감사원이 뒤늦게 밝혀낸 사실들이다. 책임지겠다는 사람은커녕 사과 한마디 들리지 않는다. 이들에게 법적 책임을 지우기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대통령 하기 쉽고 장관 하기 편한 나라다.

 

박근혜 정권은 얼마나 다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대통령은 ‘그걸 대통령이 모를 리 있겠느냐’고 모두 수런거리는 사안에 대해 ‘나는 몰랐다’고 한마디 하거나 침묵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특별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대국민 사기극에 가속엔진을 달아줬던 감사원은 대통령이 바뀌자 돌연 표변해 ‘문제투성이 사업’임을 들춰낸다. 전 정권의 감사원장을 유임해준 데 대한 보은일까. 늦게라도 밝혀내 그나마 다행 아니냐고 항변한다면 감사원이 너무 초라해진다.

 

남재준 원장 체제의 국정원은 달라졌을까. 국정원의 원훈은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다. 요즘 국정원을 보면 이 원훈과 꼭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국정원 홈페이지는 자유를 ‘안보를 확고히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국정원은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가운데 입맛에 맞는 문구만 골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애써 해석한다. 그런데 그 뒤 어떻게 됐나? 엔엘엘은 원래 그 지점에 멀쩡하게 살아 있다. 국정원 해석대로라면 노 전 대통령은 엔엘엘을 포기했는데 북한이 사수했다는 얘기가 된다. 노 전 대통령을 흠집내려고 대화록을 북한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해 해석한 결과 국정원은 북한 주장에 동조하며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를 하는 꼴이 되고 있다. 국방부 해석은 ‘대화록에 엔엘엘 포기로 해석할 만한 발언이 있긴 한데 그건 노 전 대통령이 아니라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이라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엔엘엘 포기 발언을 했다는 국정원 성명에 대해 국방부가 ‘그런 해석은 사실 왜곡’이라고 에둘러 지적한 셈이다. 국정원은 창피한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지도자의 거짓말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란 책을 쓴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는 가장 위험한 거짓말로 ‘지도자들이 자기네 국민들에게 하는 거짓말’을 꼽으며 “공동체의 삶을 혼탁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고 일상생활에도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권 책임자들의 거짓말이 임기가 끝난 뒤에야 뒤늦게 밝혀지는 악순환을 끊을 방법이 없을까. 임기 이후에라도 거짓말에 대해선 반드시 책임을 지우고 처벌을 받도록 하는 일일 것이다.

 

임석규/정치·사회 에디터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