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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편집국에서] 박근혜 문제 / 김종철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7. 4.

등록 : 2013.07.03 20:04 수정 : 2013.07.04 09:38

 
김종철 정치부 기자

 

 

국정원의 대선 여론공작은 본질적으로 이명박 정권의 문제였지 박근혜 정권의 문제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종북세력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며 심리정보국 직원들한테 인터넷 댓글을 달도록 지시한 사람은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충성해온 이명박 아바타였다. 그의 배후가 있다면 이 전 대통령일 것이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아 조심스럽긴 하지만, 국정원 불법공작의 착수와 실행에 박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가 수혜자이긴 해도 현직 대통령을 제쳐두고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정원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권력 생리에 맞지 않는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1998년 정계에 입문한 이후 민주적 인식과 태도가 부족하긴 했지만, 자기 아버지처럼 민주주의를 짓밟는 식의 더티 플레이를 한 적은 없다. 국정원의 댓글 작업도 2009년 원 전 원장이 국정원을 맡은 직후부터 시작됐기에 박 대통령과 연결짓기는 무리다.

 

박 대통령의 측근이나 선거캠프 주요 인사가 국정원 등 이명박 정권과 ‘거래’했을 가능성은 높다. 김무성 의원이 총괄선대본부장 시절에 주요 국가기밀이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입수했던 사실은 그 단초이다. 또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투표 이틀 전에 국정원 댓글에 대한 수사 결과를 조작해서 거짓 발표한 것도 박근혜 캠프 쪽과의 교감 아래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박 대통령이 직접 관련되지 않은 한 여전히 측근 등 당사자들이 책임질 사안이지 박 대통령 자신의 문제는 아니다. 단지 박 대통령의 책임이라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국가기관이 저지른 불법행위의 진상을 밝혀 재발 방지책을 내놓는 것이다.

 

이처럼 국정원 사건은 지난주 남재준 국정원장이 느닷없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함으로써 ‘박근혜 문제’가 됐다. 남 원장은 2007년 대선 때부터 박 대통령을 도운 핵심 측근인데다 ‘대통령 1인 중심’으로 움직이는 현 정부의 시스템으로 미뤄볼 때 박 대통령이 대화록 공개라는 중대 결정을 몰랐을 리 없다. 설령 진짜로 또는 증거가 없어 남 원장의 독자 결정론을 수용하더라도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에 대한 정치적 부담과 최종 책임은 박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박 대통령은 대화록에 대해 측근을 통해 “국정원이 결정한 것” “여야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정원 사건에 대해서는 “도움을 주지도, 받지도 않았다”며 방관자인 양 팔짱 끼고 있다. 대통령의 할일과 책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박근혜 문제’의 핵심이다.

 

또다른 ‘문제’는 조기 수습할 수 있었던 사안을 수렁으로 몰아간 정권의 판단력과 국정운영 능력이다. 대화록 공개로 국정원 사건을 덮을 수 있으리라는 계산은 완전히 어긋났다. 방송과 조·중·동의 일방적인 응원에도 불구하고 대화록 공개 이후 국민 다수는 오히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엔엘엘 양보 발언을 한 게 아니라고 판정했다. 국정원과 청와대 고위층, 여당 의원 등 이른바 권력 엘리트의 문서 해독 능력이 장삼이사보다 못한 셈이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을 노 전 대통령이 김 전 위원장에게 보고했다고 오독할 정도니 복잡하고 철학적인 엔엘엘 발언을 거꾸로 해석하는 것이 그들에겐 당연할지 모르겠다.

 

‘박근혜 문제’가 문제인 것은 실력 없는 사람들에게 현명한 국민들의 삶과 미래가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박 대통령이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야 한다.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을 더 불행하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김종철 정치부 기자 phill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