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가 변호인의 의뢰를 받아 참사 당시의 크기와 형태로 제작한 망루 위에서 특공대원 역을 맡은 사람들이 진압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맨 위쪽 사진에서 보듯 망루 2~3층과 3~4층 계단 위에 4층 바닥으로 통하는 구멍이 나 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철거민들이 이 구멍으로 화염병을 던졌다고 주장했다. 가운데 사진에선 세 명이 2~3층 계단을 오르고 있다. 특공대원 최아무개는 계단 위에, 권아무개는 2층 바닥에서 막 계단을 오르려 하고 있었다. 최아무개의 머리는 4층으로 통하는 구멍과 불과 50센티미터에서 길어야 150센티미터 거리였다. 맨 아래 사진은 2~3층 계단에 서 있던 특공대원과 4층 구멍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보여준다. 만약 화염병이 3~4층 철제계단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면 좁디좁은 2~3층 계단을 오르던 특공대원들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1심, 항소심, 대법원은 “일부 특공대원들은 그 상황에 따라서 불이 붙은 화염병을 보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결했다. 김형태 변호사 제공 |
[토요판]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
<27> 용산참사 사건(3)
“머리 위로 화염병 날아오는 건 못 봤습니다”
“더위가 채 가시지 않았을 때 처음 뵈었는데 어느덧 가을이 저물어 갑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힘든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값진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쪼록 건강에 조심하시고, 항상 마음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가끔씩 쉬실 때 시 한 편, 노래 한 곡 들으시며 삶의 여유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2009년 가을. 말도 안 되는 용산 1심 판결 선고를 들으며 그대로 변호인석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그냥 밖으로 나와 버린 내가 안쓰러워 보였던 걸까.
며칠 뒤 한 검사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았다. 변호사 노릇 수십년에 검사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 시집 한 권에 클래식 음악 시디 한 장이 같이 왔다.
그 시집 첫 페이지는 김수영의 ‘풀’이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진압경찰 특수장갑 기술자의 고초
이웃 어려움 도와주러 왔다가 그만 불길 속에 까맣게 타죽은 아저씨, 칠순 할아버지. 징역 5, 6년씩을 받은 철거민들. 저들은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누운 풀들일까. 그리고 그들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먼저 웃을 수 있을까. 호프집 주인 이충연은 신혼 예쁜 새색시 놓아두고 망루에 올랐다가 같이 있던 칠순 아버지가 불에 타 죽고, 저는 불길을 피해 뛰어내리면서 다리를 다치고 징역 6년. 망루 짓는 거 도와주러 왔다 특공대에 붙잡혀 엄청 얻어맞고 병원에 입원해 내내 다리 절며 재판을 받은 상도동 철거민 천주석은 징역 5년. 공교롭게도 그는 진압경찰들이 쓰는 특수장갑을 만드는 기술자였다. 그는 법정에서 검사와 이렇게 문답했다. “상도동 철거민들 요구사항은 무엇인가요? 각종 비리로 땅 지주도 구속, 조합장도 구속, 구청 공무원까지 구속된 상태이기 때문에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습니다. 전철연에 가입한 동기는 무엇인가요?
특공대원은 못 봤다고 했다
내가 물어도, 검사가 물어도
화염병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1~2미터 앞에서 못 본 것이다
한데도 1심, 항소심, 대법원은
모조리 화염병 탓으로 돌렸다 말도 안되는 1심 선고를 듣다
나가버린 내가 안쓰러웠을까
한 검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시집 한 권, 음악시디 한 장까지
검사 편지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집 첫 장엔 김수영의 ‘풀’이…
저는 25년 정도 장인 정신을 가지고 일하였고, 한국에서 이런 장갑 만드는 사람은 2, 3명밖에 안 되어서 이런 철거싸움 같은 데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조합이 고용한 용역이 제 처의 귓방망이를 때려 길바닥에 쓰러뜨린 후, 배를 걷어차서 제 처가 바지에 오줌을 싸고 말았습니다. 경찰이 있었는데도 서라는 시늉만 할 뿐 용역이 도망을 쳐서 제가 끝까지 따라가서 잡아다가 경찰에 인계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에서는 오줌을 싸고 뇌진탕 상태인 처를 형사과 의자에 앉혀 놓고 2시간 30분 이상 계속 조사를 하였습니다. 일단 병원 응급조치를 부탁했는데도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철거민이고 소수이지만 이기고 싶은 마음에 전철연이 다른 철거민 조직보다 깨끗하고 강하다는 소리를 듣고 가입했습니다. 전철연에 가입하면 어떻게 보호를 받을 수 있나요? 그렇게 얻어맞고 서럽지 않도록 보호해 줄 동료가 있다는 생각에서 가입한 것입니다.” 십수년째 용산에서 조그만 짜장면 집을 하던 마흔살 노총각 김대원도 가게 차리려고 들인 돈의 반도 못 받고 쫓겨나게 되자 망루에 올랐다가 징역 5년. 선고 전, 나는 화재가 화염병을 던져 일어난 게 아니라는 판단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었다. 그게 안 되더라도 최소한 경찰의 과잉진압은 법원이 인정하리라 믿었다. 쯧쯧, 순진도 하시지…. 결과는 참담했다. ‘모든 건 폭도인 철거민들 탓.’ 1심 9명 철거민 중 2명이 징역 6년, 5명이 5년, 2명이 집행유예. 동료 다섯을 불길 속에 잃고 자신들은 5, 6년 감옥살이. 과연 저들은 그들을 그렇게 눕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날 수 있을까. 그날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기름 넣으러 주유소에 들렀는데 주유를 하던 어떤 할아버지가 조수석에 있던 나에게 다가왔다. “김 변호사님이시지요?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변호사님, 힘내세요.” “………” 아아, 그래 바람보다 먼저 웃으리.
판사님, 망루 안은 운동장이 아닙니다
1심 판사는 철거민들이 망루 4층에서 화염병에 불을 붙여 2-3층 계단에 있던 특공대원 권아무개, 최아무개를 향하여 던져 불이 난 거라고 했다. 농성자들이 불붙은 화염병을 던지는 걸 많은 진압경찰들이 보지 못했다는 나의 주장에 대해서는 판결문에서 이랬다. “경찰 특공대원들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내용이 일부 일치하지 않는 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자신들의 진입 순서, 농성자들이 강하게 저항하는 긴박한 상황, 망루 내에서 있었던 위치, 화재 당시의 시선, 망루 내부에 머무른 시간 등으로 인하여 각각의 경찰 특공대원들이 망루 내부에서 겪었을 상황은 제각각일 수 있고, 뿌려진 소화기 분말로 인하여 시계가 넓지 않았던 점 등을 고려하면 일부 특공대원들은 그 상황에 따라서 불이 붙은 화염병을 보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망루 안이 무슨 학교 운동장이라도 된다는 소리일까. 망루는 가로세로 각 6미터에, 한층 높이가 190센티미터로 4층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농성자들과 특공대원들이 공방을 벌이던 각 층 계단 부분은 폭이 90센티밖에 안 되어 한 명씩만 올라갈 수 있는 아주 좁은 공간이었다.
화재 당시 특공대원들은 맨 앞 3, 4명이 2층에서 3층 오르는 계단에 올라서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머리는 4층 바닥에서 불과 50센티 내지 150센티 안팎. 2층 바닥에 서 있었다 해도 머리에서 4층 바닥까지는 2미터 수십센티 남짓.
계단은 지름 1센티짜리 구멍들이 숭숭 뚫린 철판이었다. 어두운 망루 안, 2층 바닥에 서 있거나 2-3층 계단을 오르던 진압경찰들이 1, 2미터 머리 위에서 불붙인 화염병이 떨어지는데도 못 볼 수가 있나? 그리고 그 화염병이 바로 자신들 머리로부터 수십센티 위 철제 계단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지는데도 이를 모를 수가 있다고?
공소장에는 불붙인 화염병을 아래에 있던 권, 최아무개 두 경찰을 향하여 던졌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두 사람 다 못 보았다고 했다. 특공대원들이 계단을 통해 위로 치고 올라갈 때 대략의 역할 분담이 있었다. 주로 맨 아래 계급들은 ‘방패조’. 방패를 들고 맨 앞에서 돌격한다. 그 뒤에는 방패조들이 앞을 볼 수 있도록 손전등을 비춰주는 ‘플래시조’. 그리고 불이 붙을 때를 대비한 ‘소화기조’. 권아무개는 선임이라, 2-3층 계단을 이미 올라선 방패조 3, 4명의 바로 뒤에서 손전등을 비추고 있었다. 화재 당시 위치는 2층에서 3층 계단을 막 오르려는 순간. 공소장대로 4층에서 화염병을 던졌다면 그는 2미터 머리 위에서 불붙은 화염병이 떨어져, 수십센티 머리 위 철제 계단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져 화염이 이는 걸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데 그는 화재 직후인 1월20일 병원에 실려 가서 이렇게 진술했다. “불상의 이유로 발발한 폭발사고에서 얼굴 등에 화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불상의 이유.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다음날 검찰에서는 이랬다. “3층 계단을 올라갈 때 펑 소리와 함께 화기가 느껴져… 펑소리를 듣고 몸을 돌려보니 2층 계단과 3층 계단 모두에서 동시에 불길이 솟았습니다… (화재가 어떻게 발생하였는지 알고 있는가요)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에 대한 반대신문을 학수고대했다. 드디어 1심 법정. 병원에서의 첫 진술을 그에게 들이대며 “불길 직전에 화염병이 날아온 것은 못 보았지요” 하고 내가 반대신문을 하자 그는 “예” 하고 대답했다. 쾌재를 불렀다. 검사가 다시 묻자 그는 자신이 펑 소리를 듣긴 했는데 화염병 터지는 소리가 아니라 순간적으로 화염이 이는 소리라고 진술했다.
특공대원 최아무개 “위에서 떨어진 건 불빛”
항소심에서도 검사가 “증인은 이 건 큰 화재가 날 당시 화염병을 보지 못하였는가요”라고 묻자, 그는 “예”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검사는 그에게 유도신문을 했다. “증인이 화재 직전에 본 불꽃은 비록 화염병은 아니라 하더라도 화염병이 던져졌을 때 나타나는 형상의 불꽃은 아니었는가요.” “증인이 불꽃을 본 것은 아니고 증인이 느낀 그 화염을 본 것은 전체적인 화염이었습니다.” 권아무개와 더불어 공소장에 화염병 공격의 또 다른 상대방으로 나와 있는 최아무개도 마찬가지로 화염병은 못 보았다고 했다. 그는 맨 앞장을 선 3, 4명 중 하나로, 화재 직전 2-3층 계단의 중간 정도를 오르고 있었다. 4층은 그의 머리로부터 1미터 남짓 위쪽. 여기서 철거민이 불붙은 화염병을 아래 3층 계단으로 던졌다면 최아무개가 이 상황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더구나 그 화염병이 3층 계단에 떨어졌다면 바로 머리 위였을 터. 검사는 법정에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증인은 망루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갈 때 위에서 화염병이 투척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요.” “예, 불빛 같은 것이 위에서 떨어진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불빛인가요. 아니면 화염병인가요.” “불빛으로 판단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물었다. “2차로 진입하면서 2층에 올라갈 때까지 화염병이 있었는가요.” “마지막에 불빛 하나를 보면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것이 유일한 것이었고 화염에 휩싸이면서 그 이후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화염병이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그 주변에 불이 일제히 일어났다’는 표현이 (검찰)진술에 있는데 화염병이 바닥에 떨어진 것과 불빛을 본 것은 다르지요.” “불빛이 앞쪽으로 떨어지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불기둥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진술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처음에 불빛을 보았기 때문에 불빛이 맞을 겁니다.” 화염병이 머리 바로 위 철제 계단에 떨어졌다면 병이 부딪히거나 깨지는 요란한 소리도 나고 불꽃도 확 올랐을 것이기에 최아무개가 화염병과 불빛을 혼동할 수는 결코 없었다. 최아무개가 본 불빛은 바로 <사자후> 동영상 지붕 처마 밑에서 시작되어 벽 모서리를 따라 수직으로 떨어진 불똥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공소장에 나와 있는 화염병의 상대방인 두 경찰 모두, 바로 1, 2미터 머리 위에서 화염병이 떨어지는 걸 본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그들의 진술은 오히려 공소장과는 전혀 다른 경로를 보여주는 <사자후> 동영상과 정황이 일치했다. 그런데도 1심은 “일부 특공대원들은 그 상황에 따라서 불이 붙은 화염병을 보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결했다. 항소심과 대법원도 마찬가지였다. <사자후> 동영상과 권, 최아무개 두 특공대원의 증언에 따르면, 공소사실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는 증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니 나는 피고인 측에서 검사의 입증책임을 뒤흔들어 놓은 걸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무죄를 입증한 거라고 생각한다. 화염병을 못 보았다는 다른 특공대원들의 증언도 줄을 이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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