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경찰서 경비과장은 진압 하루 전인 2009년 1월19일 용역업체 직원이 물포를 쏘고 경찰이 방패로 호위한 사실을 인정했다.(맨 위) 용역들은 남일당 건물 1, 2층을 점거하고 폐타이어 같은 걸 태워서 시커먼 연기와 독한 냄새를 농성자들에게 뿜어 올렸다.(가운데) 용역들은 이 불을 끄러 온 소방관들을 협박하기도 했다. 김형태 변호사 제공 |
[토요판]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
<27> 용산참사 사건(마지막)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가톨릭 미사는 제 잘못을 고백하며 주먹으로 가슴을 쾅, 쾅, 쾅 세 번 치는 걸로 시작한다. 그랬다. 용산 참사는 바로 우리 모두의 탓이었다. 마지막 변론에서도, 다큐 영화 <두 개의 문> 인터뷰 때도 나는 그렇게 고백했다. 결국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시공사와 건물주, 세입자의 대차대조표
재개발을 맡은 삼성물산. 공권력을 동원한 이명박 정권. 저 지옥 같은 망루에서 아저씨, 아줌마들을 토끼 몰듯 몰아댄 경찰. 재개발 이익에 목을 맨 조합. 일당 몇 푼에 아버지 같은 노인 불알을 잡아당기고 아줌마들을 두들겨 팬, 그 역시 하층민인 용역깡패들. 이들도 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다. 아파트 분양받아 돈 좀 벌어보려고, 뉴타운 공약 내걸면 무조건 국회의원 뽑아준 사람, 바로 나다. 그래서 제 발이 저린 우리는 2009년 1월20일 해가 아직 오르기 전 푸르스름한 겨울 새벽에 사람들 여섯이 망루에서 불에 타 죽은 사건을 그저 ‘참사’라 부른다. 참사란 끔찍한 사건이란 뜻이니 그저 결과만을 보여주는 말이다. 그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나 책임은 드러나 있지 않다. 모두에게 책임이 있으니 슬쩍 말을 흐린 거다. 철거민들 역시 아무리 막다른 골목이었다 해도 망루 밖으로 화염병을 던졌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밖에 없는 목숨으로, 4, 5년의 징역살이로, 너무도 지나친 책임을 졌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책임을 안 졌다. 1심 법원은 얼토당토않게도 이렇게 판결했다 .
“도시재정비 등의 과정에서 부당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책무라 할 것이지만, 피고인들이 주장하는 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세입자들에 대한 권리보호 문제는 입법부나 행정부에서 정책적 논의와 협의가 필요한 사항으로 이 재판에서 판단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용산 4구역에는 지하 7층, 지상 40층짜리 초대형 건물 6개가 들어서게 되어 있었다. 토지, 건물 소유주 327명에 총 1780억원, 한 사람 평균 5억4000만원의 이익이 돌아간다. 삼성물산은 1조4000억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반면에 주거세입자 464명에게는 가구당 1680만원, 상가 세입자 439명에게는 평균 2300만원의 보상금이 주어졌다. 도합 179억원. 상가 보상금은 처음 가게 차리려고 들인 시설비의 반이 채 안 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근처 상가에 가서 장사하려면 수천에서 수억원의 권리금을 주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한 푼도 못 받고 고스란히 날리는 거였다. 국가의 재개발 지구 지정으로 시행, 시공사는 1조4000억원, 건물주들은 1800억원의 이익을 얻는 데 반해 상가 세입자들은 시설비 반도 못 건지고, 권리금 때문에 거리에 나앉는 게 용산재개발의 대차대조표였다.
국과수도 모른다는 화재 원인
경찰도 인정한 과잉진압
책임은 몽땅 철거민이 떠안았다
무덤으로 혹은 감옥으로 용역들은 건물 1, 2층 점거하고
시커먼 연기를 위로 뿜어올리며
출동한 소방관들을 협박했다
경찰은 용역들을 호위해줬다
시골 목장과 보안관이 하나돼
주민 괴롭힌 ‘서부활극’ 같았다
용산 상가 세입자를 내쫓는 명도소송 민사재판부는 재개발관련법 위헌 제청결정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상가 임차인 등은 자신의 의사에 기하지 아니한 채 재산권을 박탈당하면서도 그에 대한 적법 여부 또는 보상의 적정 여부를 다툴 수 있는 권리구제의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당하는 문제가 있고, 이는 기본권 제한에 있어서 정당한 권리구제 방안이 확보되고 청문의 기회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적법절차의 원칙에 위반된다.” 나는 법정에서 이런 말도 했다. “여기 앉아 있는 판사도 검사도 변호인인 나도, 만일 이들 철거민 입장이 되었다면 아마 망루에 올랐을 거고, 아니 화염병도 던졌을 겁니다.”
화재 원인과 관련해서 이, 노 아무개 두 경찰만이 공소사실에 엇비슷한 진술을 했다. 두 사람은 농성자들이 망루 안으로 화염병을 계속 던진 것은 분명하고 따라서 “그로 인해서 화재가 난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추측성 진술을 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변호인 반대신문에서는 화염병이 어떻게 큰불로 번졌는지는 못 보았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정작 화염병 공격 대상으로 공소장에 적혀 있는 권, 최 아무개 두 특공대원은 바로 머리 위에 있던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던지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명백히 증언했다. 맨 앞에서 2~3층 계단을 오르고 있던 다른 대원들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맨 앞 방패조였던 조, 안, 배 아무개는 하나같이 1, 2차 진입을 통틀어 철거민들이 망루 안으로 화염병을 던지는 것은 못 보았다고 증언했다. 석, 정 아무개도 2차 진입한 뒤에 화염병은 날아오지 않고 갑자기 회오리 같은 불길이 확 났다고 진술했다.
통상 검찰 편이기 마련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발화 지점과 원인은 알 수 없다는 감정서를 냈다. 국과수 실장은 1, 2심 법정에 나와서도 정전기에 의한 발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검찰이 제출한 동영상 등 여러 증거들을 종합해 살펴보아도, 발화 원인이나 위치를 논단할 수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경찰이 찍은 동영상엔 왜 7시20분이 빠졌나
과잉진압을 자백하는 경찰 진술 3000쪽을 끝까지 검사가 내놓지 않은 것 말고도 진실 규명을 가로막은 게 또 있었다. 당시 7개의 경찰 채증조들이 사방에서 현장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2개를 뺀 나머지 동영상들은 유독 화재 발생 시각인 7시20분 전후 부분이 빠져 있었다. 진입 경찰을 따라 옥상에 올라간 동영상도 7시19분까지는 나오다가 정작 7시20분은 끊기고 7시21분에 불이 한창 타는 장면부터 다시 나온다. 왜 화재 순간만 빠져 있느냐고 묻자 “카메라를 높이 드는 과정에서 버튼을 잘못 눌렀다”거나 “상황이 종료된 줄 알았다”고 한다. 정말로 어이가 없다.
<사자후> 동영상, 농성자들 바로 1~2미터 아래 있던 특공대원들의 진술과 국과수 감정을 모아보면 화염병에 의한 화재라고 판단할 수는 없었다.
두 번째 쟁점인 공무집행의 적법 여부도 마찬가지였다. 검사는 끝까지 3000쪽을 제출하지 않았다. 그런데 항소심이 시작될 무렵 이걸 받아낼 길이 생겼다. 철거민들은 서울경찰청 간부들과 특공대장, 용산경찰서장을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고소를 했었다. 예상대로 검찰은 이들을 무혐의 처리했고 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해서 3000쪽이 마침 법원에 와 있었다. 나는 항소심 재판부에 기록이 법원에 있으니 복사를 해달라고 신청했다. 재판장은 변호인에게 복사를 허용한 뒤에 2월 정기인사 때 갑자기 다른 데로 발령이 났다. 정상대로라면 그 재판장은 아직 이동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2012년 10월 이명박 대통령 사저부지 매입 특검 때 나와 함께 특별검사 후보로 복수 추천되어 최종적으로 특별검사 지명을 받았다.
어쨌든 3000쪽이 내 손에 들어왔다. 서울경찰청 경비부장, 기동본부장, 특공대 진압계획 작성 담당자는 하나같이 시너를 투척하고 화염병을 던지는 것을 보고받았더라면 진압을 중단하였을 거라고 잘못을 시인했다. 그들은 이런 말도 했다. “정보수집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기관과의 관계, 시간적인 부족함 때문에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습니다.” “저희가 완벽하게 준비를 하여 변수를 만들지 않았어야 하는데 유가족들에게 굉장히 죄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기자회견을 열어 3000쪽에서 경찰들이 자신들의 잘못으로 사람들이 여섯이나 죽은 걸 자백하는 진술들을 공개했다. 수사기록을 보면 1월20일 사건이 나고 한 열흘 정도는 검찰이 경찰의 과잉진압을 추궁하는 듯한 모습도 얼마간 보였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게 철거민 탓으로 수사 분위기가 바뀌었다.
법과 정의를 사슴가죽 위에 쓴 ‘가로 왈(曰)’자쯤으로 아는 겐가. 실컷 ‘가로 왈’자로 읽다가 수틀리면 가죽을 세로로 잡아당겨 ‘날 일(日)’자라고 우긴다.
그때 검찰이 끝까지 수사를 철저히 했더라면 아마 경찰 고위간부 몇은 구속되었을 게 틀림없다. 나는 마지막 변론에서 ‘용산’은 꼭 시골 목장 주인과 보안관이 한패가 되어서 주민들을 괴롭히는 서부활극 같다고 했다. 지주조합이 재개발하려는데도 세입자들이 안 나가고 버티면 민사 판결을 받아 집달리가 강제집행을 해야 한다. 남의 집을 무단 점거한다고 경찰이 쳐들어와서 잡아가는 건 불법이다. 경찰이 민사문제에 한쪽 편을 들어 개입해서는 안 된다.
경찰은 한강로 대로변에서 하루 종일 테러라 할 정도로 화염병이 날아다녀서 치안유지를 위해 개입했노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철거민들이 망루를 채 완성하기도 전인 19일 오전 7시30분에 이미 서울경찰청 차장과 경비부장이 현장에 출동했다.
3000쪽에서 검찰은 특공대 제대장에게 이렇게 물었다. “진술인이 3회에 걸쳐 현장 답사한 내용과 경찰청 상황일지나 정보보고에 따르면, 철거민들이 화염병이나 불법행위를 한 사실은 없고, 다만 농성중인 건물에 다가오는 경찰을 저지할 목적으로만 돌이나 화염병을 투척하였고 일반 시민들에게는 별다른 위험한 상황은 없었던 것으로 보여 경찰이 굳이 서둘러 진압에 들어갈 상황은 아니었던 것 아닌가요… 오히려 경찰에서 불법행위를 유도한 후에 진압작전을 수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데 어떤가요.”
그 무간지옥을 겪고 나서도 우리는…
이 물음 그대로였다. 철거민들은 일반 시민들에게 화염병을 던질 이유가 전혀 없었다. 특공대 제대장들도 같은 취지의 진술을 했다. 남일당 건물 주변은 이미 대개가 철거되어 사람이 거주하지 않았고, 경찰들이 빙 둘러싸고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오히려 용역들은 경찰 통제를 무시하고 이 지역을 마음대로 드나들었다. 그리고 남일당 건물 1, 2층을 점거하고 폐타이어 같은 걸 태워서 시꺼먼 연기와 독한 냄새를 농성자들에게 뿜어 올리고 있었다. 이 불을 끄러 온 소방관들을 협박하고 경찰들은 모른 체했다. 심지어 경찰은 용역이 인근 옥상에 올라가 철거민들에게 물대포를 쏠 수 있게 소방차 호수를 연결해 주고 전경들로 하여금 방패로 호위를 하게까지 하였다.
진압작전도 같이 했다. 조합 쪽에서 진압장비인 크레인, 지게차, 컨테이너 운반 트럭 제공에 협조했다. 경찰지휘무선에는 이런 보고도 들어 있다. “용역경비들 해머 등 시정장구 지참하고 우리 경력 뒤를 따라가지고 3, 4층 시정장치 해체중입니다.”
이게 바로 목장 주인과 보안관이 한패인 서부활극이 아니고 무언가.
동네에서 장사하던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들이 농성하는 데 테러범 섬멸이 목적인 특공대를 투입한 것도 큰 잘못이었다. 이들은 모두 전직 군 특수부대원들이었다. 테러범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섬멸하는 게 특공대의 임무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로 경찰 한 명이 죽는 위험을 무릅쓰고 작전을 펴 ‘테러범’ 다섯 명을 섬멸했다. 특공대는 망루 안이 어떤 구조인지, 그 안에 위험한 인화물질인 세녹스가 20리터들이 60통이나 있는지도, 어떤 사람들이 몇 명이나 그 안에 있는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마구 밀어붙였다. 사전 모의훈련이나 충분한 안전대책도 물론 없었다. 1차 진입과 철수 뒤 세녹스 유증기가 가득 찬 망루에 재진입을 한 것은 결정적인 잘못이었다. 그리고 무엇이 그리도 급해서 망루 지은 지 만 하루도 안 되었는데, 제대로 된 협상 한번 없이 특공대가 섬멸작전을 벌인 걸까.
경찰 지휘부와 말단 특공대원들은 잘못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런데도 법원은 1, 2, 3심 모두 이런 진압이 정당한 공무집행이라고 판결했다.
그 무간지옥을 겪고 나서도 대자본, 그 심부름꾼인 정권, 조합, 용역, 경찰, 검찰, 법원, 아니 돈이 최고인 나와 우리 모두,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 제도도 법도 바뀌지 않았다. 우리의 욕심도. 그래. 모두가 공범인 우리는 용산참사의 책임을 면제받고, 용산은 그저 책임질 사람이 없는 ‘참사’로 남았다. 아니, 망루 밖으로 화염병을 던진 철거민 ‘테러범들’만이 그 책임을 몽땅 도맡아 졌다. 무간지옥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감옥으로, 까맣게 타 죽은 자들은 무덤으로.
푸르스름한 새벽하늘 아래 주홍빛으로 활활 타오르던 용산 남일당 망루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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