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밝지 않았지만 그는 영락없는 보수주의자였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정의와 의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가정적 배경 또한 이와 무관치 않았다. 결국 40대 후반 직업적 소신에 따라 정치무대에 등장한 그에게서 미국 합리적 보수의 상징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냄새가 났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경북대서 ‘한국사회서 정의란’ 순회강연 첫 시작
영남시민들, 영남대통령 잘못 비판해야 정의 온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18일 대구 경북대에서 연 강연에서 “영남 출신 대통령이 잘못을 저지르면 영남출신 시민들이 잘못했다고 해줘야 진정한 정의가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 날 표 전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전국 및 해외 순회 강연을 시작했다. 첫 강연이 열린 대구 경북대 글로벌 플라자 효석홀에는 1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준비된 700석이 모자라 참석자들이 복도와 연단에 앉고도 서 있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표 전 교수는 “조희팔 사건 봐라, ‘대구 사람 아닌가’ 하면서 믿고 품어주고 돈도 다 줬더니 수천명의 피 같은 돈을 가져갔다. 우리 지역 사람은 무조건 믿을 수 있고 다른 지역 사람은 무조건 아니다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끼리끼리’를 벗어나고 진영을 벗어나야 한다, 비판한다고 영남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조희팔 사건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전국에 10여개 피라미드 업체를 차리고, 의료기기 대여업으로 30∼40%의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속여, 투자자 3만여명에게서 4조원을 가로챈 국내 최대 규모의 다단계 사기 사건이다. 2008년 당시 대구지방경찰청 수사과장이 조씨에게서 수표를 건네받고, 해경 경찰관이 조씨의 밀항을 도왔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지역 세력들이 조씨를 비호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표 전 교수는 이와 관련해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상을 이야기하며 “저 사람이 내 편인지 남의 편인지, 이것이 나에게 어떠한 결과를 줄지를 전혀 생각하지 말고 판단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표 전 교수는 이번 대선에서 벌어진 ‘색깔론’과 ‘국정원 사건’을 치명적 반칙 사건으로 들었다. 표 전 교수는 “종북좌파 빨갱이 얘기만 나오면 전쟁을 경험한 어르신과 그 자식들은 본능적인 두려움이 확 끌어오른다. 그런데 대선 기간 동안 종북, 좌빨이란 용어가 횡행했다. 국민이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정원 사건’을 스포츠 경기에 빗대어 경찰을 비판하기도 했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한국과 일본이 맞붙었는데 후반 연장전에서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으려던 순간 일본 선수 미우라가 발을 걸어 넘어뜨린 것이다. 그러면 비디오 판독을 해야 한다.” 시간을 끌면서 증거 인멸 의혹을 불러일으킨 경찰의 수사태도를 지적한 것이다. 표 전 교수는 “정의는 절차에서 온다”며, “따라서 반칙이 있었을 수 있다는 의혹은 대단히 엄중하다”고 덧붙였다.
이 날 강연에서는 지역주의의 고질적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표 전 교수는 “‘호남 사람들은 믿지마, 다 사기꾼이고 빨갱이야’라고 우리를 분열로 내모는 영남분들은 모두 정의의 적이다. 마찬가지로 호남에서 ‘영남X들은 다 패권주의고 자기들끼리 뭉치고 다해먹고 우리의 적이다’라고 하는 분들도 우리의 적이다”라고 말했다.
표 전 교수는 20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20%의 유권자들이 문 후보를 지지한 대구 지역에서 가족·이웃과 갈등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로가 생각하는 정의를 찾기 위해 프리허그를 연 광주에 이어 대구를 택했다”며, 대구를 첫 강연지로 선택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정의란 무엇인가’ 강의는 2월 부산, 3월 홍콩,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5월 광주 등 매달 1번꼴로 진행될 예정이다.
조애진 기자ji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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