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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공작소 <4-4> 부산 중구 스토리텔링- 2013 자갈치 시장의 봄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2. 26.

푸른 부산바다 옮겨놓은 듯 … 펄떡펄떡 뛰는 '날 것'의 풍경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2013-02-25 19:40:29
  • / 본지 12면
   
부산 중구 자갈치 시장은 부산 경제의 힘찬 박동을 알리는 심장부요, 펄떡펄떡 뛰는 서민생활의 진원지이다. 해질녘 자갈치 시장 길에서도 날 것의 풍경이 머물러 있다. 사진 제공=문진우 사진작가
- 어부 거친 숨소리 가득한 공판장
- 숨가쁜 경매로 여는 역동적 아침

- 수십 년 세월 지켜낸 터줏대감들
- 모질었던 현실 이기고 일군 희망

- 투박함 속에 속정 깊은 아지매들
- 그 생동감이 부산 상징으로 우뚝

펄떡펄떡 뛴다. 푸드득푸드득 용솟음치듯 꼬리 짓이 장관이다.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다. 억센 저항으로 수조를 박차고 튀어 올라, 시장 바닥을 우당탕탕 차대는 놈들도 있다. 푸르디푸른 부산의 바다를 모두 이곳에 옮겨 놓은 듯, 여기서도 퍼드덕, 저기서도 퍼드덕 활어의 은빛 비늘이 봄 햇살을 받아 온통 눈부시다.

2013년 봄을 앞둔, 자갈치시장 활어센터의 풍경이다. 자갈치시장은 부산의 역동적이고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대표적인 장소다. 부지런하면서도 활달한 부산사람들의 성정도 자갈치시장과 무관할 수는 없다. 자갈치시장이 부산의 근현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부산사람의 생업에 가장 영향을 미쳤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이 부산 경제의 힘찬 박동을 알리는 심장부요, 펄떡펄떡 뛰는 서민생활의 진원지이다. 부산의 상징, 자갈치시장. 이곳의 싱싱한 '날 것(生)'의 풍경과 그 속에 살아가는 억척스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부산의 아침을 여는 자갈치 공판장

   
주경업 부산민학회장의 자갈치 시장 드로잉.
자갈치시장 어항. 거친 바다를 헤치고 온 어선들이 아침나절 숨을 고르고 있다. 정박 중인 오징어 트롤선에서도 건장한 어부들의 숨소리가 거칠다. 오징어를 하역하고 있는 중이다. 갑판 밑 창고에서 한 상자씩 차곡차곡 갑판으로 올라오면, 간이 컨베이어로 공판장 공터 쪽으로 실어내는 작업이다. 연신 오징어 상자는 끝없이 올라오고, 어부들의 팔뚝엔 불끈불끈 힘이 들어간다. 말 그대로 풍어다.

오징어를 부려놓는 공판장 옆으로는 이미 삼치 떼를 부려놓았는데, 그 양이 작은 산을 쌓고도 남겠다. 마치 삼치 떼가 뭍으로 몰려와 푸른 파도로 철썩이는 것 같다. 퍼덕이는 삼치군단이 우리 밥상으로 오르기 위해 도열하듯 가지런하다. 태평양을 회유하던 그들이, 와글와글 푸들푸들 푸른 심장으로 이곳 자갈치까지 와 푸득거리는 것이다.

이런 날이면 갈매기들에게도 풍성한 잔칫날이다. 수백, 수천의 갈매기 떼들이 온 하늘을 하얗게 덮고 끼룩거린다. 계속 선회하며 호시탐탐 맛깔 진 먹이를 노리고 있다. 공판장에는 수산물들이 퍼덕거리고 자갈치 바다 위에서는 갈매기 떼들이 끼룩거리며 장관을 이룬다. 이들 사이에서 자갈치사람들은 제 일들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산더미 같은 생선을 선별하는 아낙들, 무게에 맞춰 생선을 박스에 담는 할머니들, 박스를 포장하는 사내들, 경매장으로 짐을 옮기는 청년…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자갈치의 아침을 여는 역동적인 풍경들이다.



자갈치 공판장. 경매가 시작되려는지 사람들 움직임이 분주하다. 상자에 담겨 있는 수산물들이 제 번호표를 달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경매를 준비하는 중매인들은 좋은 생선을 고르기 위해 두 눈을 반짝거린다.

경매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딸랑딸랑" 공판장을 울린다. 수십 명의 중매인들이 위판 될 오징어 상자 더미 쪽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경매사가 위판 되는 물건을 잠시 소개하고 곧바로 경매에 들어간다.

중매인들이 재빠르게 생각해둔 가격을 경매사에게 수신호로 알리기 시작한다. 손가락을 구부리기도 하고 꼬기도 하고, 혹은 주먹을 힘차게 내지르기도 한다. 치열하고 숨 가쁜 경매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가격이 오를수록 경매사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말은 속사포처럼 빨라진다. 중개인의 현란한 수신호와 낙찰가를 알리는 경매사의 큰 목소리가 경매의 열기를 더 한다. '하루의 삶'을 중매인에게 맡긴 자갈치아지매들도, 중매인 뒤에서 수신호로 '금액을 더 쓰라, 포기해라'를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그렇게 경매는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결국 한 중매인이 통 크게 나머지 오징어를 전량 낙찰 받는다. 자갈치 사람다운 호기로움이 만면에 묻어난다. 탄탄한 그의 어께가 자갈치 바다처럼 든든하다.

이렇게 낙찰된 수산물은 자갈치 아지매가 좌판에 놓고 팔거나, 부산 전역의 식당으로 팔려나간다. 그리하여 우리네 밥상에는 싱싱한 '바다 것'들로 푸른 물결이 일렁이고, '푸드득' 고등어 한 마리 튀어 오르는 '풍성한 한 상'이 차려지는 것이다.

■속정 깊은 자갈치 사람들

   
김명숙 씨(왼쪽), 박명남 씨
자갈치 활어시장. 이곳 수조에는 '봄 바다 것'들로 가득 가득하다. 봄의 전령사 도다리, 봄 바다의 폭군 방어, 봄을 맞아 살이 오른 줄도다리와 불볼락, 감성돔과 능성어, 성대, 밀치…. 풍성하다 못해 허벅질 정도다.

'대흥상회' 김순석(54) 씨가 통영에서 갓 올라온 방어를 수조에 담는다. 6~7kg 정도에 7~80cm에 이르는 대물들이라 간단치가 않다. 그래도 기어이 100여kg의 방어를 모두 수조에 담아 넣는다.

김순석 씨. 속정 깊고 구수한 자갈치 아저씨이다. 자갈치시장에서는 꽤 유명한 생선회 썰기의 달인이다. 고향 통영에서 20살에 자갈치로 흘러들어와 23살 때 생선회칼을 잡기 시작했다. "회를 썰면서 아마도 제 손가락 살을 베어낸 것만 해도 족히 두어 근은 될 겁니다."

30살이 되던 해 순석 씨는 배덕희 씨와 결혼을 한다. 순석 씨의 외할머니와 덕희 씨의 할머니가 맺어준 가연(佳緣)이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10만 원의 단칸방에서 신접살림을 차렸다. 적은 월급에 집세를 주고 나면 생활이 빠듯했다. 그나마 장마 때가 되면 일이 없어 여름 한 철 살기가 막막했다.

그러던 중 헐값에 활어가게를 인수를 한다. 그때부터 아내 덕희 씨도 가게에서 일을 돕게 된다. 얼마나 억척인지 고무대야에 활어를 담아 끌고는, 노점상이 있는 곳에서 활어를 팔았다. 일은 고되어도 희망의 나날이었다.

그러나 순석 씨가 불의의 사고로 뇌수술을 하게 된다. 잘 되던 가게도 작파하다시피하고 병구완에 매달렸다. 그 뒤로도 순석 씨는 작은 사고로 애 깨나 태웠다. '고생이 많았겠다'고 하니 "제가 한 일이 뭐 있습니꺼? 남편이 고생이지예"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러면서도 옆에 있는 순석 씨에게 "아이고~ 밉상!"하며 곱게 눈을 흘리며 웃는 자갈치 아지매다.

이제 집도 사서 통영에 있는 제사를 부산으로 가져 왔단다. 집이 없어 제사를 지내지 못한 장손의 애절한 마음이 가슴에 와 닿는다. 슬그머니 아내의 손을 잡아주는 김순석 씨의 큰 손이 그저 따뜻하기만 하다.

■부산의 대표적 상징어, 자갈치 아지매

'자갈치 아지매'는 부산의 활기찬 이미지 그 자체이다. 투박하고 억센 사투리 속에 생동감 넘치는 목소리, 그리고 고난과 역경을 희망으로 엮어내는 억척스러움, 그러면서도 넉넉한 인심에 속정 깊은 성정, 가족을 위해 막일도 마다않았던 헌신적인 희생…. 이런 점 때문에 자갈치 아지매를 우리 부산의 상징으로 꼽는 것이다.

'거제 장목 산곰장어'집 박명남(65) 씨는 자갈치시장에서 39년째 꼼장어를 구워 팔고 있다. "자갈치 여객선 부두 자리에서 33집이 오순도순 모여 장사를 했는데, 시청, 구청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철거를 하러 오는 거라. 참 쫓겨 다닌다고 바빴던 세월인기라. 어쩔 때는 아홉 번이나 철거하러 온 날도 있었다 아이가." "그래도 우짜겠노, 철거반이 가면 또 자리 잡고 장사를 했지."

명남 씨는 자신이 자갈치 노점상 터주라고 말한다. "꼼장어 1인분 3백 원 할 때부터 장사를 했다 아이가. 지금 꼼장어 장사 중에 다라이(대야) 놓고 꼼장어 팔았던 사람은 내 뿐이다. 자갈치서 산전수전 다 겪었지"

그렇게 억척스레 살았어도 자신이 송씨 집안 종갓집 며느리라는 점을 자랑스러워했다. 종갓집 며느리였기에 노점을 하면서도 떳떳했고, 온갖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견디어 냈단다.

그의 얼굴에는 이제 억세고 강단 있는 자갈치아지매의 얼굴은 없다. 자갈치를 온전히 가졌기에 온화한 미소만이 감돌뿐이다. '우리 집은 꼼장어도 맛있지만, 묵은 지로 볶아주는 볶음밥이 별미다. 한 번 먹으러 온나이~'



'문희엄마 고래고기'집 김명숙 씨(57)는 28살인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자갈치시장 노점에 앉았다. 50여 년 전에 시작한 어머니의 자리를 물려받아 올해 30년째 자갈치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20여 살 때부터 어머니 일을 잠깐씩 도왔으니 얼추 40여 년의 세월이다.

지금도 미색이 곱지만 그 시절에는 뭇남정네 애 깨나 태웠단다. 특히 뱃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아, 당사자는 생각도 않는데 명숙씨를 두고 쟁탈전(?)도 벌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3남매를 잘 키워 큰 아들이 가게를 물려받을 예정이다.

고래고기는 구룡포 중개인에게 고래가 날 때마다 받아서 판다. 원래 손이 크고 정이 많아 단골들에게는 고기를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본전만 되도 고객들에게 파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인심도 인심이지만 고기의 신선도를 위해서라도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명숙 씨의 고래가 맛있는 이유는 고래를 잘 삶기 때문이란다. "고래를 삶을 때 뜸을 잘 들여야 합니더. 뜸을 넉넉하게 들이면 고기 근수는 줄어도 고기가 맛있다 아입니까." 고래고기가 맛있다고 입소문에 전국적으로 주문이 들어온단다. 가끔씩 '외국에까지 택배도 보낸다'며 '부산지역에서는 고래고기계의 큰 손'이라고 명남 씨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지금 이 두 자갈치 아지매는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가, 가게를 하나 얻어 함께 운영을 하고 있다. 두 사람 다 거제가 고향인데다 난전에서 장사를 할 때도, 바로 옆자리에서 동고동락 했기에 자매처럼 깊은 정이 들었단다.

차가운 자갈치 시장 길바닥의 삭풍을 맞으며, 거칠고 모진 철거반과 몸싸움하며 함께 견디고 지켜낸 세월이었다. 지금은 삶의 무게를 내려놓은 듯 초연한 모습들이다. 아들들이 뒤를 이어 일을 배우고 있고, 손님들과는 세상 돌아가는 일을 나눌 정도로 편안해졌단다.

이 모두가 '자갈치 시장이 자리를 내어준 덕분'이라며 자갈치시장에 무한한 애정을 보낸다. "암, 자갈치 아니었으면 어찌 살았겠노? 자석들은 또 어떻게 키우고…. 고맙지, 참말로 고맙지 뭐."

아직도 자갈치시장의 삶은 부박하다. 그리고 헤쳐 나갈 일도 많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단단한 '희망'이 있다. 때문에 '자갈치'는 결코 '포기나 실망' 따위의 단어는 없다. 그래서 아직도 자갈치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힘차게 고동치는 것이다. 마음이 힘들고 움츠러드는 날, 자갈치시장으로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자갈치를 노래한 예술인들

- 억척스럽고 굴곡진 현장서 영감
- 삶의 애환, 작품세계에 쏟아 부어

   
고 최민식 사진작가(왼쪽), 김규태 시인
예술인들에게 자갈치 시장은 예술적 영감의 대상이자 작품의 고향이었다. 6·25 동란 이후 피란민에 섞여온 예술인들은 이곳 자갈치 시장의 억척스럽고도 굴곡진 삶의 현장에서 예술세계의 생명력을 회복시키곤 했다.

세계적 리얼리즘 사진의 대가 고 최민식 선생에게도 '자갈치 시장'은, 우리 시대의 곤고함과 질곡의 세월이 아프게 아로새겨져 있는 대표적 피사체였다.

생선 비린내 때문에 손을 뒤로 한 채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여인, 단속반에 우악스럽게 끌려가는 여인, 어린 손자를 업은 채 국수를 먹이는 여인, 우산이 없어 비닐을 걸치고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생선좌판 앞의 여인…. 이 모든 작품들이 흑백 시절을 웅변하는 한국 리얼리즘의 대표작들인 것이다.

부산에서 존경받는 원로시인이자 국제신문 논설주간이었던 김규태 시인도 자갈치에서 예술적 허기를 달랬다. 유신시절 언론통제에 분노하고 절망하던 그는, 시인과 기자로서의 역할을 상실한 채, 늘 자갈치에서 소주 한 잔으로 그 분노를 삭여야 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빗댄 작품들을 써내려갔다고 술회한다.

서양화가이자 향토사학자인 주경업 씨도 자갈치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가 펴낸 다수의 부산 관련 저서에서 자갈치의 역사와 관련 기록을 발품을 팔아 세세하게 기술하고, 드로잉으로도 자갈치를 기억하고 남기는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그 외에도 고 현재호, 윤종철, 고 박병재 등의 화가들과 자갈치 연작을 썼던 고 정영태 시인 등이 자갈치의 삶과 애환을 고스란히 작품세계에 쏟아 부운 자갈치 예술인들이다.


■ 필자 최원준 약력

   
-1987년 문예지 '지평'으로 시인 등단

-시집 '오늘도 헛도는 카세트테이프', '금빛 미르나무숲', '北邙'

-공저 '부산, 장소를 꿈꾸다-스토리텔링집' 등

-현 문화공간 수이재(守怡齋) 대표, (사)최계락문학상재단 사무국장

최원준 시인

※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부산 중구,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