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은 홍문관·예문관 대제학을 비롯해 몇몇 관직을 역임했지만 그보다는 일신상의 이유를 들어 벼슬을 사양한 경우가 더 많았다. 69살 때 선조가 이조판서 직위를 내렸을 때도 퇴계는 “제 일신상으로 보면 몸에 병도 중하거니와 재주가 또한 중책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하다”며 사양했다. 고향에 내려가 학문에 힘쓰고 후학 양성에 전념하겠다는 뜻도 강했지만 사화(士禍)의 싸움판에 나서지 않기 위해 일신상의 이유를 들어 국왕의 명을 완곡하게 거절한 측면도 있었다.
사전적 풀이로 ‘자기 한 몸에 관한 일’이라는 일신상의 이유는 진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관직을 떠나거나 사양할 때 편리하게 사용돼온 용어다. 1971년 1월20일치 <동아일보>를 보면, 당시 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사표를 낸 공무원과 국영기업체 임직원이 30명이 넘는데 이 가운데 출마 때문임을 밝힌 사람은 한 명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일신상의 이유’였다고 한다. 게다가 일신상의 사유로 인한 사표 제출은 처리 기간이 명시되지 않아 공화당 공천에서 탈락한 공직자들은 모두 구제되는 분위기였다고 하니 이처럼 유리한 사퇴 사유도 없었던 셈이다.
사실 일반 노동자들의 경우는 일신상의 사유라는 말의 사용을 조심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상 일신상의 이유는 근로자가 정신적, 육체적 또는 기타의 이유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를 지칭하는 용어로, 근로자의 귀책사유에 따른 해고의 정당한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인수위 외교국방통일분과 최대석 위원이 일신상의 이유로 인수위원직에서 물러난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베일에 싸인 인사는 언제나 궁금증을 유발하며 뜬소문과 유언비어의 진원지가 되기 마련이다. 정권이 제대로 출범도 하기 전부터 인사를 놓고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질 않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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