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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아침 햇발] 석고대죄만 하지 말고 책임을 지라 / 백기철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1. 16.

등록 : 2013.01.15 19:21 수정 : 2013.01.15 19:21

 
백기철 논설위원

선거 끝나고 이런 얘기 안 하려고 했다. 대선 패배 뒤 한 달이 돼 가지만 한심할 뿐이다. 좀 팍팍하더라도 짚을 건 짚어야겠다.

 

야권이 총선, 대선을 내리 졌는데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다. 무슨 ‘사과 투어’는 한다는데 정작 책임지는 이는 없다.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책임을 지랬지, 누가 석고대죄 퍼포먼스만 하라고 했나. 반성하고 책임질 사람들은 뒷전이고 애꿎은 문희상 비대위만 전국을 돌며 회초리를 맞겠다는데, 난센스에 가깝다.

 

리저리 따져보면 다 일리 있는 말이다. 안철수가 열심히 안 도와줘서 졌다는 둥, 안철수라면 가볍게 이겼을 것이라는 둥, 문재인이라서 그래도 48%라도 했다는 둥, 모두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나는 잘못이 없고, 당신들이 잘못했고, 상황이 그랬으니 어찌할 수 없다, 자 이제 다 잊고 새로 시작하자, 이런 식이다.

 

제대로 된 지도자나 정당은 일이 잘못됐을 때 책임을 어떻게 질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국민이 보기에 가혹할 정도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무슨 큰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다. 두 번의 중요한 선거가 총체적 실패로 귀결된 지금 독하게 마음먹고 정리해야 한다. 어물쩍 넘어가면 또 실패한다. 그간 지녔던 정치적 무게만큼 각자 책임을 지면 된다. 여기에 친노 주류, 비주류 따질 것 없다.

 

문재인 전 후보는 의원직을 사퇴하고 백의종군하는 게 낫겠다. 사실 문재인이라도 되니까 이 정도 했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단일화 국면에서부터 선거 구도가 꼬여서 야권에서 누가 돼도 박근혜를 이기기 어려웠다. 문재인이 죽을 고생해가며 진정성과 경륜으로 여기까지 끌어올렸다. 그렇다고 문재인이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리고 국민에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면 그건 문재인의 몫이다. 부산 지역구 주민과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죽어가는 야권을 살리는 일이 더 급하다. 친노 주류들에 둘러싸여 엉거주춤하고 있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 더 늦기 전에 다 던지고 새로 시작하는 게 좋다.

 

안철수 역시 정치적 책임이 작지 않다. 귀국하면 국민 앞에 사죄하고 책임지는 모습부터 보여야 한다. 안철수는 대선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너무 늦게 뛰어들었고, 결정적 고비에서 미숙함을 드러냈다. 안철수가 책임지는 모습은 이후 정치 행보에서 사심을 버리는 것이다. 5년이든 10년이든 배운다는 자세로 뛰어야지 당장 5년 뒤에 무엇을 하겠다고 설치면 공든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민주당 인사들이 책임지는 방법은 과감한 세대교체밖에 없다. 민주당은 지금 거의 불임정당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발버둥이라도 쳐야 한다. 그것이 세대교체다. 예상을 뛰어넘는, 친노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무색게 하는 파격적인 세대교체가 답이다. 민주당에 그런 내적 동력이 있다면 그나마 희망이 있다.

 

친노 주류 문제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한명숙 전 대표다. 총선 패배에 대해 민주당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래 놓고 어떻게 대선을 이긴다고 생각했을까? 재판 중인 한 전 대표에겐 가혹하지만 의원직을 내놓고 물러나는 게 뒤늦게라도 책임을 다하는 길이다. 적전 분열로 대선 국면을 망친 진보정당 쪽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책임지는 것은 끝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다. 국민이 오케이할 때까지 반성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면 터널의 끝이 보일 것이다. 민생이니 생활정치니 좌회전이니 우회전이니 이리저리 머리 굴려 봤자 소용없다. 일단 국민 앞에 모두 내려놓는 게 급선무다.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