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가 재기하려면
[중앙일보] 입력 2012.12.15 00:38 / 수정 2012.12.15 00:38
안철수씨를 따르던 많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허탈한 심정을 지울 수 없다. 안철수씨가 정치 하겠다고 나섰을 때 그는 우리 보통 일반인들에게는 순수·정직·영특, 그리고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사람’으로 인상 지어졌다. 기존의 대부분 정치인은 거짓·사기·음모·배신·자기이익추구의 대명사였다. 일반인들이 이들에게 염증을 느꼈고, 그래서 그가 겪어온 인생역정이 참으로 인상적으로 부각됐다. 많은 사람이, 특히 젊은이들이 그를 따랐고 그가 나라를 이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대통령선거란 세속적인 역정이 그를 시험대에 올렸으며, 그가 지닌 매력을 잃게 하고 말았다. 첫째, 지난 11월 23일 그는 대통령 후보를 돌연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출마 이유였던 정치개혁을 아무런 보장도 없이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을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해버리고 말았다. 순수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았다. 단일화하겠다는 상대방의 정치개혁이 현실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하겠다고 했다. 정권교체만 되면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무리하고 위험한지 알고나 있는지 의아스럽다. 그러고는 또 지난 12월 6일 이념적 차이를 인식했다는 말을 하면서도 다시 선거 유세에 나서는 모습이 또한 많은 사람의 배신감을 불러일으켰다. 안철수씨는 이제 명분보다 실리를 선택함으로써 그렇게 비판했던 다른 정치인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스스로 입증하고 말았다.
둘째, 그보다 더 우리를 의아스럽게 한 것은 그가 보인 영특함이 국정을 다스릴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함을 알았을 때였다. 그간 그는 한 번도 나라를 경영할 정책과 미래에 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밝힌 바 없었다. 기업경영을 해봤다, 연구소를 가져보았다, 대학교수를 해보았다, 재산을 사회에 쾌척해보았다는 것만으로는 나라나 사회의 얽히고설킴을 다 풀어낼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대로라면 지금까지 키운 덩치마저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다. 고령화·양극화·다문화·자원에너지·고용불안·환경변화와 국제위기 등 회색지대가 많으며 격돌이 얼마나 심각한지, 나아가 그 문제 풀이의 방향이 어디로 이어질지 어렵게 되고 있다. 그럴 즈음 산업사회는 물론 정보사회를 넘어 스마트사회로 급변하고 있다. 기술이 사회를 주도하면서 인간 중심의 네트워크 공개사회 그리고 창조적 혁신 신가치 창출의 사회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는 새로운 정책을 요구하고 있고, 새로운 가치창출 없이는 나라의 존망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안철수씨가 메시아처럼 등장한 소위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시대가 메시아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안철수씨가 다시 등장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자격을 갖추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의 뭉게구름처럼 보기 좋게 떴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양당도 마찬가지다. 모처럼 귀하게 피어난 안철수 현상을 금과옥조처럼 새겨 지금과 같은 가치기준이 전혀 없는 끝없는 논쟁과 자기이익 추구에서 벗어나 우리의 미래사회가 어떤 것인지, 그것에 맞추어 비전과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지금같이 그냥 말로만 새로운 미래를 외쳐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대선을 계기로 환골탈태할 때다.
박 우 희 서울대 명예교수 전 세종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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