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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불공정거래행위 ‘솜방망이’ 처벌 이 정도였나 [한겨레]

by 부산중구마중물 2012. 12. 26.

등록 : 2012.12.26 08:31 수정 : 2012.12.26 08:38

 

기업들의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한양대 김차동 교수팀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2009~2011년 3년 동안 짬짜미(담합) 등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적발된 125건을 조사한 결과, 위반행위에 따른 기업들의 부당이익은 25조1408억인 반면 과징금은 2조4294억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 과징금이 불법행위로 얻은 이익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 것이다. 해당 사건의 전체 매출액 167조6052억원과 견주면 1.4%밖에 안 되는 규모다. 이번 조사는 기업의 부당행위를 계량화한 국내의 첫 시도라 의미가 크다.

 

이런 실정이니 기업들이 불법행위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짬짜미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등의 행위가 적발되지 않으면 최선이고, 어쩌다 적발되더라도 잠깐 욕을 먹고 쥐꼬리만큼 과징금을 물면 그만이다. 제도가 불법을 부추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 교수팀이 조사한 외국의 짬짜미 적발률이 15% 정도라고 하니 국내에서도 열에 여덟아홉건의 불법행위는 법망을 피해 간다고 봐도 무방하다. 적발되지 않은 불법까지 고려하면 기업들의 불공정 이익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기업의 위법행위를 억제하고 소비자 피해를 구제하려면 더 엄격한 규제장치가 절실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집단소송제의 위력은 11월 초 미국 정부에 의해 과장 연비 표기가 적발된 현대·기아차의 대응을 보면 쉽게 확인된다. 미국 소비자들이 집단소송에 나서자마자 현대·기아차는 파장 확산을 우려해 즉각 1인당 70~90달러 규모의 보상 조처를 발표했다. 증권 분야에만 제한적으로 집단소송제가 도입돼 있는 우리 사회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실제 피해액보다 훨씬 고액의 손해배상액을 물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위법행위를 예방하는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불공정거래행위 제재 수단의 허실이 드러난 만큼 박 당선인은 두 제도 도입에 즉각 나서야 한다. 재계가 들고나올 게 뻔한 경영위기 논리에 좌고우면한다면 제도화는 물건너갈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박 당선인이 짬짜미로 한정한 집단소송제의 범위도 부당내부거래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등으로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