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규 논설의원 |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있게 첫째 함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원하는 답은 셋째 ‘긴급하진 않지만 중요한’ 상자다.
이 문답은 존 햄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소장이 지난해 11월,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첫 아시아 순방 직전 토머스 도닐런 백악관 외교안보보좌관을 초청해 연설을 듣는 자리에서 소개한 일화다. 햄리 소장은 처음 정부에 들어가 일할 때 이런 질문을 받고 자신도 첫째 상자라고 대답했더니 ‘틀렸다’는 소리가 돌아왔다고 했다. “당신이 매일 첫째 상자로 달려가면, 준비가 필요하고 환경을 가다듬는 데 시간이 걸리는 셋째 일은 거들떠볼 시간도 없을 것”이란 설명과 함께.
요즘 한반도에는 한순간도 맥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긴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해 유엔 안보리가 ‘페니실린 강도’를 한층 높인 제재 결의를 내놓는가 하면, 남북 군당국 간에는 ‘핵 불바다’와 ‘김정은 정권 괴멸’과 같은 험한 말이 태연하게 오간다.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 북한을 억제하는 방법을 놓고도 핵무기 자체 개발, 전술핵 재도입, 전시작전지휘권 환수 연기,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가입, 6자회담 재개, 대북 특사 파견, 평화협정 체결 등 다종다양한 견해가 백가쟁명처럼 분출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심오한 전략과 철학에 근거한 방안이라기보다 감정적 대응이거나 고식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들이다.
오바마 제2기 행정부는 단기 응급처방에 급급한 우리나라와 달리, 이른바 ‘미얀마 방식’의 북한 문제 해결책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지난해 말 오바마 대통령의 역사적인 미얀마 방문이었다. 그는 양곤에서 평양을 향해 ‘핵무기를 내려놓고 평화의 길을 가면 미국이 뻗은 손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신호를 보냈다. 미국의 아시아 귀환 정책 설계자인 도닐런 보좌관도 11일 아시아소사이어티가 주최한 ‘2013년 미국과 아시아 정책’이란 연설에서 “북한이 지금의 길을 바꾸면 경제지원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이 바로 적대적 관계가 어떻게 훌륭한 협력관계로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산 증거”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대외정책을 책임지는 핵심 인사들이 지속적으로 반복해 미얀마 방식의 대북 해법을 내놓는 건, 그것이 곧 미국이 추구하는 대북정책의 방향이자 목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평양과 양곤은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르다. 높은 중국 의존도와 국제 고립, 군부독재라는 점이 개방 전의 양곤과 평양의 닮은 점이라면, 핵무기 개발과 3대 세습, 반체제 세력의 존재 여부는 큰 차이점이다. 아세안의 꾸준한 개입 정책으로 미얀마가 개방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 것도 북한과 다르다.
이런 상황에선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해 아무리 ‘미얀마형 개혁’을 추구해도 소득을 얻기 힘들다. 여기에 우리의 할 일이 있다. 평양과 양곤의 차이를 이해하고 좁히는 일에 나서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에 ‘미얀마의 아세안’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외교·안보 당국자가 대통령의 ‘깨알’ 지시만 받아 적는 지금과 같은 환경에선 이를 기대할 수 없다. 발등의 불 끄기에 매몰되지 않고 셋째 상자를 먼저 살펴보는 사람이 절실하다.
오태규 논설의원, 트위터·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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