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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486 정치 10년 … 우리에게 뭘 바꿨나 물으면 할 말 없다”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3. 23.

[중앙일보] 입력 2013.03.23 00:02 / 수정 2013.03.23 00:18

‘진보행동’ 해체 선언한 우상호 의원

486세대의 ‘맏형’으로 불리는 우상호 의원. 그는 “486 정치인들이 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우상호 민주통합당 의원은 486(4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 정치인의 맏형이다. 81학번인 그는 연세대 총학생회장 시절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부의장을 맡아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의 전면에 섰다. 6월 항쟁의 결과물로 지금의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6월 민주화항쟁이 정권교체로 이어진 건 아니었다. ‘대통령 전두환’을 ‘대통령 노태우’로 바꿔 놓았을 뿐이다. 당시 그는 “앞으로 10년간은 정치권 주변에 얼씬하지 않겠다”며 학생운동권 ‘동지’들과 다짐했다고 한다. 실패를 뼈저리게 반성해 보자는 취지였다. 그랬던 그가 얼마 전 “486 세대가 기존 관행을 혁파하는 데 주저했다”며 또 반성문을 썼다. 지난 19일 당내 486 모임인 ‘진보행동’의 해체를 선언하면서다.

1987년 정권교체에 실패한 뒤 10년의 ‘동안거(冬安居)’를 다짐했던 때와 타이밍이 비슷하다. 과거의 약속은 지켰다. 그가 처음 정계에 입문한 건 3년이 더 지난 뒤인 2000년 4월 총선 때였으니 말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창당한 새천년민주당에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들인 이인영·오영식 의원, 한양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임종석 전 의원과 동반 입당해 공천을 받았다. 첫 도전은 실패로 끝났으나 2004년 17대 총선에서 이겨 국회에 진출한 뒤 지난해 19대 총선을 통해 재선에 성공했다. 그 사이 8차례 당과 선거캠프 대변인을 맡았고, 민주통합당에선 최고위원을 지내면서 정치적 위상도 커졌다. 지난해 총선 때는 전략홍보본부장, 대선 때는 문재인 캠프 공보단장을 맡는 등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그를 만나 반성문의 내용을 들어봤다.

 - 왜 반성문을 썼나.

“정치인이건 정치세력이건 10년이나 정치를 했으면 평가를 받아야 한다. 10년 전 우리는 ‘젊은 피’로 대접받으며 기존 정치권을 바꿀 수 있다는 국민의 기대 속에 정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독자적으로 색깔을 드러내지도 못했고 정치 변화를 이끌어 내지도 못했다. 학생운동 시절 국민은 선명 야당을 요구했다면 우리가 여당으로 정치를 시작할 땐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내건 정치 개혁이 화두였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국민이 ‘그래서 너희들은 무엇을 바꿨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 지난 5년을 어떻게 보나.

“2007년 대선 패배 이후엔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에만 몰두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너희들이 말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이 뭐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민주당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 후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가 커지며 ‘반(反) 이명박’이란 가치를 너무 강조했다. 국민이 이명박 정부를 싫어해도 ‘그럼 너는 뭔데’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했는데 정권교체만 주장했다. 정권교체는 그 자체만으론 시대적 요구가 아니었다.”

- 구체적으로 잘못한 점을 설명해 달라.

“실력 경쟁을 했어야 했다. 대선 패배 후 우리 당 일각에선 진보를 과도하게 내세워 졌다는 시각이 있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진보적 담론을 차용하지 않았나. 국민은 경제민주화나 보편적 복지에 대해 상당 부분 동의했다. 무상급식이 대표적이다. 진보적 담론은 시대정신이다. 그러나 뼈아픈 건 누가 이를 제일 잘할지 여론조사로 물으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나왔다는 것이다. 486 정치인들은 문제 제기는 잘할지 몰라도 문제 해결까지 잘할진 의문이라는 국민의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했다.”

- 486 정치인들은 이미 당내에서도 기득권을 누릴 만큼 누렸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반성하는 것이다. 과거엔 감옥에 갈 각오로 대학생 신분을 포기하고 싸웠는데 이제는 국회의원이 되고도 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는가 반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를 잘해야 한다. 솔직히 말해 세비를 30% 깎자는 얘기가 있는데 이보다는 ‘정치를 잘하자’가 맞다. 내가 100원을 받으면 200원, 300원만큼 일을 하고 국민과 소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게 합리적이다. 100원을 70원으로 줄인다고 정치가 바뀐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너희는 절대 바뀌지 않으니 돈이라도 덜 받으라’는 국민의 생각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이건 정말 심각하다.”

 

- 486 정치인들은 20대에 민주항쟁의 주역으로 대접받아 오만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건 아닌 것 같다. 정치를 시작하며 우리는 과거 학생회장 시절의 권위는 잊어야 한다고 했다.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바닥을 기어야 한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 20년간 서로를 너무 잘 알고 믿고 지내 왔다. 우리가 뭉쳐 있으면 당연히 좋은 일을 하리라는 관성이 있었다. 너무 친하니 실수해도 비판을 삼갔고 그냥 믿어 주니 건강한 긴장관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형, 내 사정 잘 아시잖아요’라고 하면 서로 약해지는 거다. 오랜 인연은 서로 뭉치는 데는 좋은 기제이나 생산성에선 도움이 되지 않았다.”

- 우 의원이 생각하는 진보는 무엇인가.

“민주통합당을 만들며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3대 과제를 강령으로 정리했다. 이게 시대적 가치다. 이를 어떻게 잘 구현하고 얼마나 제대로 할지를 보여 주는 고민과 경쟁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80년대 가장 과격한 이념과 행동양식을 보였던 사람들이지만 지금도 군부독재 타도, 민주주의 쟁취라는 80년대 가치를 요구하는 건 아니다. 진보는 이제 이데올로기로서의 진보가 아니라 ‘생활 진보’다. 국민의 삶을 하나라도 개선해 변화를 주자는 게 생활 진보다. 예컨대 지금도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무엇을 먼저 할지를 따진다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하다. 국보법 폐지를 앞세우는 게 80년대적 가치라면 비정규직 해소, 일자리 창출, 대기업·중소기업 간 불공정행위 철폐 등을 통해 국민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게 생활 진보다.”

- 보수는 486 정치인들을 좌파라고 여긴다.

“보수도 이념으로서의 보수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등장할 때 보수였지만 혁신으로 보였다. 그래서 보수가 박 전 대통령을 추앙하는 게 아닌가. 보수를 주장한다면 ‘청년 박정희’를 배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혁신 보수와 혁신 진보가 경쟁해야 한다. 우리가 뭔가 얘기했을 때 ‘빨갱이’로 규정하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 나도 부친이 공화당 당원이셨다. 대한민국은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서로 제시한 해법을 놓고 국민을 상대로 경쟁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

- 그러나 운동권 출신 486 정치인의 대북관을 미심쩍어 하는 시각이 많다.

“남북 문제만큼은 우리 세대의 색깔이 위 세대와는 다르다. 학생운동 시절 우리 중에 주사파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 친구들은 지금도 정치하면서 친북 활동을 하는 거 아니냐’는 인식은 잘못됐다. 단언하지만 그렇지 않다.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 개성을 방문했을 때 나는 ‘뭐하는 짓인가. 이런 식으로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더 좋아질 것 같은가’라고 북측 인사들에게 항의했다. 민주당의 486 세대들은 북한의 대남 접근방식에 대단히 못마땅해한다. 단 이명박 정부의 대결지향적 대북정책에 대해선 답답해하고 이렇게 해선 해법이 없다는 게 분명하다.”

- 안철수는 486 정치인들과 동시대를 살았지만 전혀 다른 노선과 경력으로 정치권에 등장했다.

“솔직히 우리는 안철수 노원병 보궐선거 예비후보의 정치방식엔 잘 동의하지 못하는 집단이다. 안 후보는 정치권을 비판하는 말을 던지며 충격을 주는 ‘레토릭 정치’를 한다. 우리는 논리와 가치가 정돈된 것을 더 선호한다. 안 후보에겐 딜레마가 있다. 새 정치를 주장하면 기존 정당에 들어오기 어렵고, 신당을 만들면 분열주의라는 비판을 받는다. 안 후보 측에서 민주당과는 ‘협력적 경쟁관계’라고 했다는데 그게 뭐고, 어떻게 가능한지는 본인이 보여 줄 문제다. 우리는 안철수 세력과 어떻게 통합할지보다는 민주당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 계파 청산을 요구했는데.

“지금 당이 대선 평가작업조차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서로 자기 계파에 불리한 내용이 담기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분들인데 계보에 속하면 말이 달라진다. 내가 대변인을 여덟 번을 하며 계파 수장들이 당을 이끌어 가는 과정을 봤다. 그때마다 한 계파는 또 다른 계파의 발목을 잡았다. 지금도 친노, 비노, 손학규계, 정세균계 그러는데 새누리당의 친박, 친이와 무슨 차이가 있나.”

글=채병건·하선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진보행동=2010년 10월 민주당 내 486 인사들이 결성한 모임. 당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인영 최고위원을 당선시킨 뒤 당내 전대협 출신들의 소모임이던 ‘삼수(셋째 주 수요일)회’를 확대해 ‘민생 중심, 현장 진보’를 기치로 만들어졌다. 우상호·이인영 의원과 함께 강기정·최재성·김기식·김태년·박완주·오영식·유은혜·윤호중·조정식 의원 등 현역 의원 25명과 김영춘·백원우 전 의원 등 총 40여 명이다. 대부분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총선과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