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는 회사까지 출근하는데 40분이 걸립니다. 이사를 하면 출근시간이 두 배로 늘어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경기 구리시 수택동에 살고 있는 회사원 임모씨(33)는 말끝을 흐렸다. 올 연말 만기가 돌아오는 전셋집에 살고 있는 그는 “전세난은 제 얘기가 아닌 줄 알았는데 막상 닥치니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며 말을 이어 갔다.
세 살배기 딸을 둔 임씨 부부는 2011년 12월 1억2000만원에 현재의 76㎡ 아파트에 입주했다. 올 연말 만기를 앞두고 좀 더 넓은 아파트로 옮길 요량으로 전셋집을 알아봤지만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없어 고민에 빠졌다. 임씨가 찾던 92㎡ 아파트의 전셋값 시세가 2억원이나 돼 최소 8000만원을 더 마련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였다.
임씨는 “결혼하고 서울 본가에서 살다 분가하면서 서울에 전셋집을 마련하지 못해 구리로 이사왔는데 여기서도 더 살지 못할 것 같다”며 “다음달부터는 남양주시 별내면 쪽으로 알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달 초 3년간의 해외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유모씨(49)도 전세난의 피해자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돌봐줄 친척이 살고 있는 분당을 벗어날 수 없었지만 친척 집 근처에는 전셋집이 씨가 마른 상태였고, 월세는 매물이 넘쳐났다. 그는 보증금 1억원에 월세 150만원을 주고 105㎡ 아파트를 힘들게 계약했다. 월세로 월급의 절반가량이 빠져나가게 돼 이만저만한 부담이 아닌 유씨는 이전 세입자도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떠났다는 중개업자의 말에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유씨는 “전세는 나중에 원금이라도 찾아 나갈 수 있지만 월세는 고스란히 날아가는 비용”이라며 “이런 식의 월세를 내고 살아갈 수 있는 직장인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전셋값 상승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 2단지 75㎡ 아파트는 3년 전 전셋값이 1억5000만원이었지만 최근 들어 2억5000만원으로 67%가량 올랐다.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165㎡ 아파트는 2008년 8월 전셋값이 8억원이었으나 최근에는 4억원이 오른 12억원에 거래되고 있다.
전셋값은 뛰고 매매가는 떨어지는 현상이 지속되면서 이달 초 기준 전국 아파트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중은 61%로 2001년 62.02% 이후 12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전셋값이 매매가의 60%를 넘으면 전셋값이 매매가를 밀어올려 집값이 오르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엔 이 같은 ‘상식’도 무너졌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은 “다주택 보유자들은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고, 실수요자들은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을 예상해 매매보다는 전세를 택하고 있어 당분간 전세난은 가중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선 소장은 “집값이 하락 대세기에 접어든 시점으로 판단되는 만큼 매매 활성화를 통한 전세가 안정보다는 중장기적인 공공임대주택 확대 등으로 서민들의 전세 수요를 충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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