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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사설] 이동흡 후보 스스로 進退 결정할 때다[조선일보]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1. 23.
 

입력 : 2013.01.22 22:56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21~22일 이틀간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헌법재판관으로 재직하던 2006~2012년 월평균 400만원씩 지급된 특정업무경비를 개인 통장에 넣어 사적(私的)으로 썼다는 의혹을 반박할 증빙 자료를 제시하거나 해명하지 못했다. 특정업무경비는 재판 자료 수집 같은 공적(公的) 용도에만 쓰도록 돼 있다. 그는 또 헌법재판관 6년 동안 예금과 지출을 합한 금액이 수입 액수보다 2억6000만원이나 많은 이유도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재판관 시절 9번 해외 출장을 나가면서 5번 부인을 동반한 것과 관용차로 출근하면서 딸을 태워 다닌 것에 대해선 잘못을 인정했다.

이 후보자는 자신의 이런 과거 행동이 큰 비리는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도 헌재소장 후보로 지명된 후 자신이 몸담았던 헌재 쪽에서 흘러나온 여러 이야기를 듣고 공인(公人)으로서 또 국민의 권리와 헌법을 지킬 소명(召命)을 지닌 헌재소장의 직무를 감당하기에는 인망(人望)을 너무 얻지 못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미국에서는 연방대법관 후보가 대학에 다닐 때 친구들과 대마초를 한 모금 피운 사실이 드러나 후보로 지명된 지 일주일 만에 자진 사퇴한 일이 있다. 그런 뜻에서 이 후보자는 자신에게 좀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있다.

이 후보자는 개인의 자유보다 사회 질서를 강조하는 판결 성향을 보여 왔다. 안정을 중시한 그의 법률관은 결코 그의 허물이 아니며 그것대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는 이 후보자와 같은 법률관을 지닌 훌륭한 법관이 많이 있다.

닉슨과 레이건 대통령은 자신들이 지명한 연방대법관 후보가 도덕성, 능력, 이념 문제로 잇달아 자진 사퇴하거나 국회 인준을 못 받자 대법관 후보를 세 번씩 지명한 끝에 임명에 성공하기도 했다. 미국의 200년 역사에서 연방대법관·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된 148명 가운데 대법원장 후보 1명을 포함, 27명이 중도 탈락했다. 고위 공직 후보자가 낙마(落馬)하면 이를 그 후보자를 임명한 정권의 인사 실패와 동일시하며 정치 공세를 펴는 건 우리 정치의 낡은 폐습이다. 우리도 이제는 여론 비판이나 국회 인준 거부로 공직 후보자가 중도 하차하는 걸 민주국가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인물 검증 과정으로 받아들일 때가 됐다.

여당이 야당의 반대와 국민 여론을 거슬러가면서 국회 인준 표결을 밀어붙이면 이 후보자가 헌재소장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임명된 상처투성이 헌재소장이 이끄는 헌재 판결에 대해 국민 신뢰가 어떨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이 후보자가 스스로 판단해 진퇴를 결정할 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