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3.01.24 00:00 / 수정 2013.01.24 00:05
고정애
논설위원
논설위원
“이런 청문회는 없애야 합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과 갓 청문회를 통과한 장관들이 차 마시는 자리에서 이런 얘기가 튀어나왔다고 한다. “근래 자식을 결혼시켰는데 청문회에서 사돈까지 다 거론되니 면목이 없더라”는 푸념과 함께였다. 인사청문회는 2000년 6월 도입됐고, 노 대통령 때인 2005년 7월 전 국무위원을 대상으로 확대됐었다. 당시 장관이었던 이용섭 민주통합당 의원이 그 자리에서 “일부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존치해야 한다. 젊은 세대들이 청문회를 의식해 자기 관리를 하지 않겠느냐”고 반박했다고 한다.
이 의원,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있다. 지금껏 213명이 인사청문 대상이 됐고, 그중 199명만 관문을 넘어섰다. 이 의원은 한 번도 어렵다는 청문회 관문을 세 번이나 통과했다. DJ 때 국세청장, 노무현 정부에선 행자부·건교부 장관에 거푸 기용됐다. 정권교체 와중에 세 번의 청문회를 거친 김황식 국무총리(대법관→감사원장→총리)나 양승태 대법원장(대법관→중앙선관위원장→대법원장)만큼은 아니어도 대단한 기록이다.
그런 이 의원에게 청문회 통과 요령을 물었더니 이같이 답했다. “며칠 준비한다고 삶을 숨길 순 없다. 옳게 사는 길밖에 없다. 자기가 생각할 때 공직에 안 맞으면 권력을 탐해선 안 된다. 대통령에게도 부담이다.”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사람 판단력이 어디 다 그런가. 대개 스스로 청백리는 못 될지라도 남들보다 바르게 살았다고 여기곤 한다. 능력도 낫다고 믿는다. 그러다 청문회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곤 당황한다. 상당수는 부적격 판정을 받고 그중 일부는 낙마도 한다. 곧 발표될 박근혜 정부의 총리·장관 후보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그간 청문회에서 추출되는 몇 가지 참고사항이 있으니 첫 번째가 ‘가랑비 무섭다’는 거다. 국무총리 1호 낙마자인 장상 후보자가 대표적이다. 법을 어긴 것도, 딱히 파렴치한 행위를 한 것도 아니었다. 세 차례의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걸렸다. “국민의 정부에서 여성 장군과 청와대 수석도 탄생시켰다. 마침내 여성 총리까지 나왔으니 이제 남은 건 대통령뿐”이라고 좋아했던 DJ도 이내 실망했다. 한때 의혹이 대여섯 건만 제기돼도 많다고 했는데 근래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이르러선 ‘흡31’까지 갔다. 진실은 늘 모호한 채였다.
그사이 대통령도, 후보자도 깨닫곤 했다. 야당은 대놓고, 여당은 은근히 무섭다는 사실을 말이다. 야당이 “낙마시키겠다”고 나서면 대체로 못 버텼다. 여당에서도 어렵다면 사실상 상황 종료다. 도덕성 기준은 점차 강화되고, 어느덧 대통령의 인사 최우선순위가 청문회 통과 여부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막판엔 “인사청문회에 안 걸릴 아무나 데리고 오라”고까지 했다지 않은가. 능력 있는 인사가 청문회 하는 자리에 손사래치는 일도 잦아졌다.
이런 풍토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달라지지 않을 거다. 청문회를 보며 자기관리한 세대가 청문회 대상이 될 때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하다. 지금과 같은 청문회에서라면 황희 정승이 장관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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