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바람 반영못한 호사누린 거대 야당/실용적 정책으로 뼈를 깎는 성찰필요
지난 17대 대선의 530만 표와 달리 18대 대선은 108만 표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보수와 진보진영의 치열한 선거전에서 100만 표 이상의 차이는 전문가들이 예상한 50만 표 차이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여론조사와 전문가들이 예상한 표차와 선거 당일 방송사 출구조사가 예측한 1.2% 즉 35만 표 차이를 넘어서게 한 73만 표는 어디에서 나왔느냐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첫째는, 투표율이 예상된 70%보다 5.8%포인트나 높았다. 약 230만 명이 더 투표장으로 나간 것이다. 둘째는, 야권이 기대했던 서울지역 투표율이 전국 평균보다 4%포인트나 낮았다. NLL(북방한계선) 발언과 연평도 포격 등은 경기와 인천 지역에서도 박근혜 지지 성향을 강화한 결과가 되었다. 셋째는, 지난 몇 번의 대선에서 호남권 투표율에 비해 영남권의 투표율이 크게 낮았는데 이번에는 호남 투표율 78%, 영남 투표율 77.92%로 막상막하했다. 넷째는, 젊은 층에도 숨은 보수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50대 이상 유권자 수가 30대 이하 유권자 수보다 약 50만 명이 많았던 점은 이미 알려진 것이었지만, 젊은이들 가운데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면 핀잔을 듣는다는 얘기가 많이 돌았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공간에서도 젊은 보수들은 공격당하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20대와 30대 유권자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박 후보에게 투표하였다. 선거 당일 오후 3시 방송에서 투표율이 많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자 새누리당은 긴장했다. 그러자 민주통합당 측은 "투표율 상승 걱정할 거면 정당 하지 말아야죠"라고 독설을 했는데, 그 발언은 민주통합당의 전략 즉 '투표율 오르면 무조건 이긴다'라는 경직된 가정이 가진 잠재적 약점과 교만함을 노출시켜 선거패배의 위험성을 키우고 말았다. 16대 대선에서는 오후 3시 이후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젊은 층의 투표참여가 폭증했지만, 이번 대선에선 오후 들어 중장년층이 대거 투표장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보다 근본적 원인으로는 새 정치 구호가 준 희망과는 달리 단일화 과정에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다가 돌연 홀로 사퇴한 뒤 며칠간의 계산 끝에 문 후보를 지지한 안철수 전 교수의 갈팡질팡 행보를 들 수 있다. 표독한 언행과 27억 먹튀 논쟁으로 진보세력의 도덕성에 흠결을 남긴 통합진보당 후보의 활약(?)도 결과적으로 문 후보에겐 독이 되고 말았다. 흔히 이번 선거를 보수-진보 간 대결, 세대 간 대결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이 60% 이상이었는데 민주통합당이 어쩌다가 그만큼의 지지를 얻지 못했는가 하는 점에 천착해야 한다. 애초 지지율이 낮았던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전 교수의 단일화를 선거 승리 철칙으로 삼은 프레임이 문제였다. 또 구름 위에 앉은 안철수 캠프가 툭툭 던지는 정치개혁 숙제를 문 후보와 민주당이 해내려 끙끙거리는 모습에서 과연 국민은 5년간 나라 살림을 맡길 수 있다고 판단하였을까?
무소속 대통령도 잘할 수 있다고 안 전 교수가 항변할 때 이미 상당수 국민은 그가 정치현실과 복잡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단일화 샅바싸움에서는 안 캠프가 권력분점과 향후 정치세력화에 몰두하는, 기성정치권과 별반 다름이 없음을 꿰뚫어보기 시작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향후 안 전 교수와 함께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는데 이는 새 정치를 바라는 안철수 현상과 안철수 개인의 성향 및 능력을 제대로 엄정하게 분리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해준다. 그보다는 여태껏 이념적 경직성에 빠져 국민의 바람을 유연하게 반영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지를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거대 야당으로 누려온 편안함과 호사를 내려놓아야 한다. 본업을 팽개치고 SNS 공간에서 군림한 폴리페서와 작가들이 만들어준 허황한 지지에 대한 중독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대선 부동층이 '반(反) 박근혜 SNS'를 보고 박 후보를 찍었다는 결과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 삶과 생활 속으로 들어가 하루하루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 있도록 실용적 정책대안을 내고 실천하는 가운데 야권의 대표주자로 민주통합당의 미래가 가능할 것이다. 계파 갈등과 노선투쟁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수권정당으로 독자생존하기 위해 어떤 밑그림을 그려야 할 것인지 뼈를 깎는 고민이 필요하다.
인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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