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3.01.04 00:57 / 수정 2013.01.04 00:57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고향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돈이 생기나 밥이 생기나. 그 말은 맞다. 그러나 안 해봐서 모른다. 장관이 얼마나 좋은지 아나 모르지….” 21년 전 대선 정국을 강타한 ‘초원 복국집 모임’(1992년 12월 11일) 녹취록에 나오는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의 발언이다.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모여 김영삼 민자당 후보 지원방안을 논의하던 자리였다. 당시 김씨는 두 달 전 법무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처지. 아직 국회의원을 해본 경험은 없었다. 그는 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의원을 먼저 지냈더라면 장관직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국회의원이 좋으냐 장관이 좋으냐. 보통사람은 둘 중 하나도 하늘의 별 따기다. 운 좋게 두 자리를 모두 경험한 이들에게 물어보면 대체로 국회의원 편이다. 국회의원은 일단 장관보다 자유롭다. 마음 내키는 대로 다닐 수 있고, 국회에서 무어라고 떠들든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는 체포·구금되지 않는다. 임기 4년간 어딜 가나 갑(甲)이다. 과거 동교동·상도동 같은 폐쇄적 계파정치 시절엔 고참 당료가 초선 의원을 불러내 혼내거나 심지어 구타하는 일도 벌어졌지만, 요즘은 그런 세상이 아니다. 딱 하나 선거철이 문제다. 오노 반보쿠(大野伴睦)라는 일본 정치인의 말처럼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그냥 사람일 뿐’이다. 그래도 공천과 당선이라는 두 산맥을 잘 넘기만 하면 다시 멋진 신세계가 펼쳐진다.
장관도 명예만큼은 국회의원 이상이다. 전직 장관은 죽을 때까지 ‘장관님’으로 불린다. 많게는 수천 명의 엘리트 공무원들을 부리면서 국정(國政)에 대한 이상과 소신을 실천에 옮길 수 있다. 그러나 일정이 아주 빡빡하고 보는 눈들이 많아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신세다. 청와대가 언제 호출할지 몰라 24시간 긴장이다. 재직기간도 짧아서 평균 14개월 남짓이다. 정치인 출신 장관인 경우 지역구에 손때 묻힐 시간이 부족한 것도 약점이다. 최근엔 인사청문회가 혹독(?)해진 탓에 장관 한 번 하려다 개인적 흠결이 만천하에 폭로돼 다음 국회의원 선거 때 손해 보는 사례가 늘었다.
그래서 역시 국회의원인가. 단 하루만 재직해도 65세부터 매달 120만원이다. 일본은 의원연금을 이미 7년 전에 폐지했다. 급식비·휴가비·가족수당·자녀학비·차량유지비·유류비·해외시찰비에 공항 귀빈실·VIP주차장까지, 우리 국회의원은 정말 좋은 자리다. 게다가 이번엔 호텔방에서 예산안을 주무르던 의원 9명이 염치도 없이 중남미·아프리카로 외유를 떠났다. 어서 귀국시키라는 여론이 빗발치지만, 차라리 돌아오지 말라고 하면 어떨까. 그들이 멋대로 늘린 국회의원 숫자를 단 9명이라도 줄이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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