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01 19:16
크리스마스를 한두 달 앞두고는 수감자들 사이에 이런 이야기가 나돌았다. ‘이번 크리스마스까지는 나치가 패망하고 수용소가 해방될 거야.’ 그와 함께 수용소 내 자연사 발생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크리스마스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이튿날부터 사람들은 급격히 무너졌다.
정신의학자 빅토어 프랑클은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을 이렇게 정리했다. 희망의 끈을 놓고 삶의 의미를 상실하는 순간, 사람은 생명까지 놓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건 삶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은 생명의 본질이다. 이를 토대로 그는 이전의 심리학이 정리한 인간 삶을 이끄는 쾌락의 의지(프로이트)나 ‘우월해지려는 욕망’(권력의지·아드리안 학파)과는 다른, 삶을 관철하는 의지, 곧 ‘의미 의지’를 제시한다. 의미 부여는 소극적인 합리화 혹은 본능적인 자기보호가 아니라, 삶을 적극적으로 이끄는 본원적인 힘이라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인간)를 대신하는 호모 파티엔스(고민하는 인간)가 나온 까닭이다.
사람이 추구한다는 행복이란 삶의 의미를 충족시킬 때 부수적으로 주어진다. 그리고 의미는 자신을 넘어 다른 대상으로 향할 때 채워진다. 존재란 타인을 향하고, 행복의 문도 밖으로 열려 있다.(키에르케고르) 신경증 환자는 대개 제 안에 갇혀 있는 사람, 부·명예·권력을 통한 개인의 행복과 쾌락에 집착하는 경우였다는 게 프랑클의 임상경험이다.
수용소 이후 삶을 프랑클은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 이들을 돕는 데 헌신했다. 쾌락, 권력의지 등 고정된 틀을 적용해 환자를 분석하지 않고, 진솔한 대화를 통해 환자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게 했다. 로고테라피(의미요법)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우리 시대 상처 입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힐링요법이겠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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