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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박보균 칼럼] 안철수 정치의 새 경험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4. 19.
[중앙일보] 입력 2013.04.19 00:43 / 수정 2013.04.19 13:43

 

 

박보균
대기자

 

 

 

안철수 정치 현장은 의외였다. 대선 때와 확연히 달랐다. 그의 보궐선거(서울 노원병) 풍경은 4개월 전 기억을 아련하게 한다.

 롯데백화점 노원점 정문 공터-. 상계동 거리 정치의 상징이다. 선거 분위기를 가늠하게 한다. 공터 전체에 1500여 명이 들어간다고 한다. 지난 일요일(14일) 오후 4시 공터 한쪽에 안철수 유세장이 자리했다. 한복판은 세일기간용 큰 좌판이 차지했다.

 재·보궐선거 시장은 붐비지 않는다. 유권자 관심도가 떨어진다. 대선 때 ‘천하의 안철수’였다. 서울 노원병 여론조사 지지율에서도 그는 크게 앞선다. 그렇다면 안철수의 정치 현장은 특별나야 한다. 규모는 작더라도 2030 유권자들의 열기로 북적대야 한다.

 그날 현장은 그런 선입관을 깼다. 장·노년층 유권자들이 우세했다. 젊은 세대의 목소리는 작았다. 뒤쪽 틈새 일부는 민주통합당 당원들이 채워줬다. 민주통합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무소속 후보 안철수는 유세를 공감 토크라고 한다. 유권자의 즉석질문은 별로 없었다. 사회자가 핵심을 대신 묻는다. 현장의 감흥은 클 수 없다.

 그 현장은 안철수 정치의 기존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았다. 대선 때 화려한 안철수 바람은 재연되지 않았다. 안철수 사람들도 출동했다. 김성식 전 의원, 송호창 의원, 금태섭 변호사도 그곳에 나왔다. 하지만 대선의 추억은 사라졌다. 보궐선거의 구조 탓인가. 안철수를 외치는 함성으로 채워진 유세 장면은 재생되지 않는다. 기억 속 안철수 정치로선 자존심 구기는 일이다. 안철수 정치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안철수는 “노원병 주민들이 처음에 나를 신기하게 대했다. 지금은 따뜻함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주민들의 심리 변화는 무엇인가. 안철수 정치의 거품이 빠지는 모습이다. 안철수 정치의 신비주의 전략은 한계를 맞았다.  

 

큰 권력게임에서 신비주의는 위력적이다. 대선의 전선은 가파르고 선명하다. 이념·세대·계층의 대치 속에 신비주의는 절묘한 무기다. 신비주의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치장한다. 안철수의 새 정치는 추상의 언어다. 애매한 말은 신비주의의 파괴력을 높였다. 작은 권력 무대는 다르다. 국회의원 선거의 문법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유권자들은 세밀해진다. 지역구 발전의 디테일, 실천 프로그램을 요구한다. 대권은 털도 뽑지 않고 먹을 수 있다. 국회의원 선거는 그런 대담한 생략을 허용하지 않는다. 정치의 교묘한 역설이다.

 대선 때 안철수 현상은 반(反)정치 바람이었다. 대중의 정치 불신은 반정치로 결집했다. 국회의원 선거의 실용과 실질은 반정치의 명분과 구호를 위축시킨다.안철수 언어는 작은 정치무대에서 도전받는다. 노원병 후보 토론회(16일)에서 다른 후보들은 “새 정치가 뭐냐. 애매모호하고 어정쩡하다”고 비판했다.

 안철수는 “새 정치는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라고 한다. 하지만 여야 후보 모두 민생을 앞세운다. 새 정치도 독점 브랜드가 아니다. 진보정의당 김지선(노회찬 전 의원의 부인) 후보는 ‘정의로운 새 정치’로 한발 더 나갔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것이 새 정치냐”는 김지선의 비판은 강렬하다.

 안철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리더십을 롤 모델로 삼았다(저서 『안철수의 생각』). 3월에 귀국하면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을 말했다. 그것을 정계 복귀의 메시지로 삼았다. 링컨과 루스벨트는 리더십 성공의 모델이다. 두 미국 대통령은 미국판 정치 9단들이다. 정치 바닥에서 단계를 거쳐 정상에 올랐다. 그들의 정치는 세련됐고 어느 순간 노회했다. 소통과 설득, 회유와 압력을 번갈아 구사한다. 그들은 정치 언어와 정책 실천을 조합할 줄 알았다.

 그들의 정치 역량은 모호함에서 벗어나 결단하는 순간 빛난다. 링컨과 루스벨트의 리더십은 편승과 반사이익에 의존하지 않는다. 자기 역량으로 위대한 성취를 이뤄냈다. 새 정치는 무엇인가. 모호한 정치 행태와의 결별이다. 일류 정치는 예측가능성을 확보한다.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진정한 새 정치가 펼쳐진다.

 새 정치는 역량의 정치다. 국회의원의 핵심 역할은 행정부 견제와 감시다. 박근혜정부는 관료의 전성기를 열었다. 관료 장관들은 노련하다. 초선 의원이 견제하기엔 벅차다. 19대 국회는 초선 의원들로 반쯤 차 있다.

 노원병 선거판은 협소하다. 하지만 정치적 의미는 미묘하고 간단치 않다. 그 선거는 새 정치의 본질을 따지게 한다. 우리 정치 전체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있다. 대선 때 안철수 현상에 끼인 거품을 빠지게 한다. 그것은 안철수 정치의 진화 과정이기도 하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