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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민주당, ‘뼛속까지 바꾸겠다’는 다짐 지키라 [한겨레]

by 부산중구마중물 2012. 12. 29.

등록 : 2012.12.28 19:04

 

대선 패배 이후 민주통합당이 보이고 있는 모습은 한마디로 지리멸렬함 자체다. 선거 패배에 대한 냉철한 평가나 성찰도,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나 세력도, 낡은 체제를 걷어내고 전면적 쇄신을 하려는 의지도 찾아볼 수 없다. 책임보다는 자기합리화, 쇄신보다는 기득권 안주, 당 진로의 창조적 모색보다는 구태의연한 계파갈등에 빠져 있다. 무엇보다 지지자들을 깊은 좌절과 절망 속에 몰아넣고도 진정으로 미안해하는 모습마저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의 지리멸렬함은 원내대표 경선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내년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노리는 중량급 인사들은 대부분 원내대표 자리를 고사했고, 경선은 주류-비주류 간의 힘겨루기 도식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야당의 새로운 출발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그들만의 행사’였다. 이런 맥빠진 분위기 속에서 치러진 경선이지만 어제의 원내대표 선출 결과는 나름대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선 선거에 잇달아 패배하고서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주류에 대한 명백한 심판이다. 비교적 계파색이 옅다는 평가를 받아온 박기춘 의원이 범친노 세력의 지원을 받은 신계륜 의원을 결선투표에서 누른 것은 주류의 이런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당내의 싸늘한 시선을 반영한다. 당의 혁신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됐다는 평가를 받기에까지 이른 민주당 주류 세력은 이번 경선 결과가 던지는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야당이 처한 위기는 통상적인 방식으로 돌파할 수 있는 상황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까지 겸임해 당을 지휘한다는 안이하기 짝이 없는 대책을 내놓았다. 박 의원이 당선된 배경에는 원내대표-비대위원장을 분리하겠다는 공약이 당내 의원들한테 공감을 얻은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누가 비대위원장이 될지, 또 그가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비대위 체제를 제대로 꾸릴 여지를 남긴 것은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민주당은 내년 5월께 임시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할 예정이다. 하지만 그때까지의 기간이 단지 당권 장악을 위한 각 계파의 각개약진에 그쳐서는 당의 미래가 없다. 고만고만한 얼굴들이, 고만고만한 정책을 내놓고 아옹다옹 싸워서는 국민의 신뢰와 기대가 더욱 떨어질 뿐이다.

 

민주당은 이제 당을 원점에서부터 해체해 총체적인 변화와 재건을 이끌어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다. 변화하는 민심의 기류 속에서 당의 좌표를 새롭게 설정하고, 낡은 정당 구조도 혁파해야 한다. 무소속 안철수 전 대선 후보와 시민사회, 진보정당 등 범야권 정치세력과의 관계 설정을 통해 정치판을 새롭게 짜는 일도 필수불가결한 과제다.

 

이런 숱한 과제의 일차적인 책임은 이제 신임 원내대표의 몫이 됐다. 앞으로 뽑힐 비상대책위원장과 호흡을 맞춰 당을 혁신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 “민주당을 뼛속까지 바꾸겠다”는 당선 소감이 단순한 수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시간은 없고 갈 길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