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장준하 선생, 출혈·어깨 손상 없어…머리 맞아 숨진 뒤 추락”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3. 26.

등록 : 2013.03.26 18:52 수정 : 2013.03.26 18:54

 

 

이정빈 서울대 명예교수가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유해 정밀감식 결과 국민보고대회’에서 “장 선생이 머리를 물체로 가격당해 숨이 멎은 뒤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는 유골 정밀감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유골 정밀감식 결과 발표

이정빈 교수 “추락사 아니다”
“두개골 함몰, 돌·아령 등 가격 의해
엉덩이뼈 골절은 추락으로 발생”

정부 발표대로 추락사였다면…
① 14.7m서 추락…출혈 있었을 것
② 머리·엉덩이처럼 어깨도 골절
③ 왼쪽 전두개골 안와 반드시 손상

 

유신 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벌이다가 1975년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된 장준하 선생은 ‘머리를 돌 같은 물체로 얻어맞아 숨이 끊어진 뒤 벼랑 아래로 추락했다’는 법의학자의 유골 정밀감식 결과가 나왔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단순 추락사했다고 발표했으나 권력기관에 의해 타살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으며, 지난해 유해 이장 때 두개골에 지름 6~7㎝ 원형 함몰 골절이 처음 드러나면서 진상 규명 요구가 커져왔다.

 

정밀감식을 주도한 이정빈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법의학)는 26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유해 정밀감식 결과 국민보고대회’에서 “오른쪽 귀 뒤쪽 두개골의 함몰은 돌이나 아령과 같은 동그란 표면을 가진 물체의 가격에 따른 것으로 보이며, 머리를 먼저 가격당해 숨이 끊어진 뒤 추락해 오른쪽 엉덩이뼈에 골절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38년 전엔 부검을 하지 않고 의사가 눈으로 살펴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데 그쳤으나, 이번에는 서울대 법의학과·정형외과·영상의학과 소속 전문가들이 △두개골 절개 △컴퓨터단층(CT) 촬영 △유전자 검사 등으로 유골을 정밀분석했다. 당시 정부는 목격자 진술 등을 바탕으로 단순 실족 추락사로 서둘러 결론내렸으나, 머리 말고는 별다른 외상이 없었던 점, 등산 장비도 없이 절벽으로 하산한 점 등 때문에 타살 의혹이 제기돼왔다.

 

장 선생의 유골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혹과 관련해, 정밀감식팀은 장남 장호권(64)씨와 친자감정을 위한 15가지 유전자(DNA) 검사를 한 결과 “부자관계일 확률이 99.99%로 나왔다”고 밝혔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추락사로 볼 수 없는 근거 이 교수는 당시 정부 발표대로 장 선생이 발을 헛디뎌 14.7m 절벽에서 떨어져 숨졌다고 볼 수 없는 주요 근거로 장 선생의 주검에 출혈이 없었던 점을 들었다. 또 두개골과 엉덩이뼈가 추락 때문에 동시에 골절됐다면 어깨뼈도 손상됐어야 하는데, 어깨 부위는 손상이 전혀 없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두개골 함몰 골절이 추락으로 생겼다면, 함몰 부위 반대편인 왼쪽 전두개골 안와(눈지붕)가 반드시 손상돼야 하는데도 멀쩡한 점도 꼽았다.

 

이 교수는 주검에 출혈이 없고 주검이 깨끗했던 것은 ‘머리 가격으로 숨이 끊어져 이미 혈액순환이 멎은 상태였기 때문에, 추락한 뒤에도 출혈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단단해서 여간해선 부러지기 힘든 오른쪽 엉덩이뼈가 6조각으로 골절되고 머리가 깨질 정도로 추락했다면, 어깨 부위가 멀쩡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추락하면서 바위 등에 긁힌 상처가 없고 어깨뼈가 정상인 것으로 미뤄 장 선생이 약사봉 계곡 지면 위로 미끄러져 떨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장 선생의 주검을 살펴본 조철구 박사의 검안 기록에서 머리 부위에 원형의 함몰 골절(지름 2㎝)과 유골의 두개골 골절(지름 6~7㎝)의 크기가 다른 이유를 두고는, ‘작은 구멍이 뚫린 타격지점 주변이 짓이겨져 두피가 덮인 상태에서는 손으로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이 교수는 추정했다.

 

 

■ 유골 정밀감식 나선 배경
1975년 8월17일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된 장 선생은, 지난해 8월1일 무덤 이장 과정에서 두개골 골절이 37년 만에 처음 세상에 드러나자, 권력기관에 의해 타살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유족들은 진상 규명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요구했으나, 행정안전부는 ‘조사 권한이 없어 진상 규명이 어렵다’는 결론을 통보했다. 이에 유족과 시민사회단체, 민주통합당 등은 장준하 선생 사인조사 공동위원회를 꾸려 지난해 12월5일 선생의 무덤을 두번째로 개묘해 이 교수팀에 유골 정밀감식을 맡겼다. 공동위원회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대한법의학회 등에 정밀감식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공동위원회 의뢰를 받고 내 전공 분야여서 참여했을 뿐 다른 정치적 의도는 없다. 오히려 의뢰를 거절했다면 그것이 바로 정치적인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장 선생 의문사를 두 차례 조사했지만, 국가정보기관이 협조하지 않은데다 당시 유족들도 유골 감식에 난색을 보이면서 ‘진상 규명 불능’이란 결론을 냈다.

 

유족 장호권씨는 “돌아가신 지 38년 만에 과학적 감식 결과 살인임이 명백하게 입증됐다. 이제 실체적 진실 규명 요구에 박근혜 대통령이 대답할 차례”라고 말했다. 이준영 ‘장준하 선생 암살의혹 규명 국민대책위원회’ 정책위원장은 “선생이 타살됐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정부는 특별조사기구를 꾸려 전면 재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