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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유레카] 무등산 / 김종구 [한겨레]

by 부산중구마중물 2012. 12. 31.

등록 : 2012.12.30 19:24

 

다산 정약용은 열일곱살 때 화순현감인 아버지를 따라 이 지역에 머무는 동안 무등산을 등반한 적이 있다. 무등산에 가게 된 연유가 재미있다. 화순 적벽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돼 조익현이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적벽의 뛰어난 경치는 여자가 화장을 한 것과 같다. 붉고 푸르게 분을 바른 모습은 비록 눈을 즐겁게 할 수는 있으나 가슴속의 회포를 열고 기지(氣志)를 펼 수는 없는 법”이라며 무등산 등반을 권유한다. 그래서 무등산을 다녀와 남긴 글이 기행문 ‘유서석산기’(遊瑞石山記)와 시 ‘등서석산’(登瑞石山)이다.

 

다산의 글 제목에서도 나타나듯이 무등산은 예전에는 주로 ‘서석산’으로 불렸다. 무등산의 어원을 놓고 수많은 설이 있지만 ‘무돌’ 즉 ‘무지개를 뿜는 돌’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의 하나다. ‘상서로운 돌’이라는 뜻의 서석(瑞石)은 ‘무돌’의 한자식 표기라는 이야기다.

 

무등산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어머니나 고향 같은 산이지만 이 산이 갖는 각별한 의미는 단순히 한 지역에 머물지 않는다. “현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무등산이 토해낸 역사적 사건들은 바로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사였다”고 박석무는 적었다. 무등산이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공교롭게도 대선에서 ‘무등의 정신’이 좌절을 겪은 직후다.

 

다산의 ‘유서석산기’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벼락과 번개, 구름과 비의 변화가 항상 이 산의 허리에서 일어나서 자욱하게 아래로 내려가는데 산 위에는 그대로 푸른 하늘” “중봉의 정상에 서면 표연히 세상을 가벼이 보고 홀로 신선이 되어 날아가고픈 마음이 드니 인생의 고락이란 마음에 둘 것이 못 됨을 깨닫는다.” 꼭 무등산이 아니어도 좋다. 새해 새 아침, 어느 산에나 올라가 보자. 그리고 일희일비하는 마음을 훌훌 벗어던지자. 두꺼운 구름장 위 저편에는 언제나 푸른 하늘이 있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