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학자(교수)들이 시대의 화두를 던진다. 올해의 사자성어와 신년 사자성어가 그것이다. 한자 네 음절에 담긴 뜻은 통렬하다. 한 해를 압축하는 사자성어는 나라의 사정과 민심이 바라는 바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서 여기에 쏠리는 국민적 관심이 실로 지대하다. 알다시피 올해의 사자성어는 온 세상이 온통 탁하기 그지 없다는 뜻의 '거세개탁(擧世皆濁)'이었다. 혼탁상이 나라 전체에 만연해 있다는 탄식이 절절이 배어 있다.
사실 새천년 들어 한 해를 결산하는 사자성어 모두 부정적 평가로 일관됐다. 오리무중에다 이합집산, 우왕좌왕 등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모습에 일침을 가했다. 문제가 많은데도 충고를 꺼려 듣지 않으려 하는 호질기의(護疾忌醫)나 사회 이반과 분열상을 질타한 상화하택(上火下澤)도 등장했다. 지난해의 경우 정부의 소통 부재를 꼬집은 '엄이도종(掩耳盜鍾)'이 선정됐다.
반면 새해를 내다보는 사자성어는 희망적이면서도 두루뭉술한 표현들이 많다. 2년 전 민귀군경(民貴君輕)을 통해 민심의 무서움을 강조했고, 지난해에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을 내세워 올바른 도리에 따를 것을 주문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그래서 신년 화두가 늘 희망으로만 끝난다는 푸념이 그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그 대표적 케이스. 4년 전 당선인 시절 이 대통령은 시화연풍(時和年風)으로 태평성대를 외쳤으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들이닥치면서 체면을 구겼다. 이듬해초엔 나라를 바로 세운다며 부위정경(扶危定傾)을 약속했지만 계층 갈등의 골만 깊어져 연말 방기곡경(旁岐曲經·그릇되고 억지스럽게 함)이라는 역공을 받기도 했다.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는 제구포신(除舊布新).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뜻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과 비슷하나, 그 의미가 강렬하다.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없애고,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 나서기를 촉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얘기일 터. 박근혜 정부가 나라의 생채기를 보듬고 고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을 수는 없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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