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
486이란 용어가 썩 적절하진 않지만, 마땅히 대체할 다른 이름도 없다. 사실 486이란 명찰이 아직 사용되고 있는 것부터가 이들의 실패를 말해준다. 486이란 생물·인구학적 특성 외에 분명한 가치나 어젠다(의제)를 중심으로 이들이 뭉치고, 그것을 위해 분투했다면 자연스럽게 다른 이름으로 대체되지 않았으랴. 따라서 486이란 용어에 손사래부터 칠 게 아니라 아직 통용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해야 한다.
정치세력으로서 486은 무능했다. 대체로 2000년 총선부터 선거에 나서기 시작해 2012년 선거까지 486은 4번의 총선과 3번의 대선을 치렀다. 총선은 1승3패, 대선은 1승2패다. 전적으로 따지는 초보적 셈법으로도 패배가 훨씬 많다. 패배의 내용을 따져보면 더 심각하다. 486은 2004년부터 당의 상층 실무라인을 맡기 시작하고, 2008년 이후부터는 당 지도부의 일각을 떠맡기 시작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486 출신의 광역단체장이나 기초단체장이 다수 배출됐다. 그럼에도 그들이 대변하고자 하는 중·서민의 삶은 더 나빠졌다. 먹고살기 힘들고 고단하다.
486이 정치권에 등장한 이후, 좁혀서 당의 중추로 성장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들의 어젠다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진보를 외치고 있긴 하지만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계층적 이해를 각성하고 이에 기초해 투표하게 만드는 정책 프레임을 만들어내진 못했다. 486의 정치전략은 연대나 통합에 그칠 뿐 한국 정치나 정당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혁신을 추동하지는 못했다. 열린우리당 시절 486은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경제적 이슈에 둔감했고, 사실상 방치했다. 정치의 질, 중·서민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를 기준으로 볼 때 486에게 실패나 무능의 평가는 결코 과한 게 아니다.
따지고 보면 지난 총선과 대선은 486이 주도한 선거였다. 당과 선거대책위의 지도부에서, 공천과 전략 파트에서 이들은 사실상 선거를 책임졌다. 그런데 총선 책임은 한명숙 전 대표 등에게 떠넘기면서 회피하더니 대선 패배에 대해선 아예 책임조차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486이 민주화의 주역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은 젊은 그들이 대중적 열망에 따라 공익적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486이 시도한 개혁 방식, 즉 당내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대세를 도모하는 ‘여의도 방식’은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 민주당의 당원들이나 대중은 새로운 리더십을 갈구하고 있다. 1970년의 김대중이 그랬듯이, 정치역정 내내 노무현이 그랬듯이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대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이해와 요구를 체현하고, 그를 통해 대중적 리더십을 구축해야 한다. 바로 ‘대중적 혁신의 방식’이다. 보통사람들의 억울하고 답답한 삶을 알고, 약한 그들이 어떤 정치를 원하는지 깨닫고 그에 부합하는 진보정치를 펼쳐야 한다.
486은 번듯한 대선 후보감은커녕 괜찮은 당 대표감 하나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정책 전문가를 거론할 때 퍼뜩 생각나는 이름 하나 없다. 철 지난 인물, 기성체제를 허물 담대한 용기도 보이지 않는다. 답답하다. 이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는 민주당 혁신과 야권의 재편을 위해 기득권을 던져버리고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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