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 |
연간 수십억원의 적자 행진을 계속한다는 이유로 경상남도가 진주의료원의 폐업을 발표한 이후, 전에 없이 ‘공공의료’가 화두가 돼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적자 경영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흑자 경영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는 지방의료원의 원장들은 입을 모아 ‘터질 것이 터졌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 진주의료원 사태가 벌어진 원인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의료제도와 공공의료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강성노조에 의한 진주의료원의 적자 경영’을 이유로 들어 폐업을 추진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적자 경영의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의 의료제도가 택하고 있는 저수가 제도다. 정상적인 진료만으로는 적자를 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민간병원에서는 다양한 비보험 진료항목과 비진료 분야의 수입 그리고 때때로 벌이는 무리한 진료로 적자를 겨우 면하고 있지만, 의료비 부담능력이 없는 취약계층을 진료해야 하는 공공의료기관은 그럴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진주의료원의 적자를 가속화시킨 것은 2008년 진주의료원의 이전 결정이다. 도시 중심에 위치한 진주의료원을 앞으로 세워질 혁신도시를 바라보고 교통이 불편하고 주변 개발이 미진한 외곽으로 수백억원의 큰 비용을 들여 옮겼다. 규모는 늘고 인력은 더 뽑았는데, 벌판으로 이전한 탓에 수입이 줄었다. 그뿐만 아니라 수백억원이 소요된 확장 이전 건축에 따르는 감가상각비 등 부대비용이 추가로 발생해 적자폭이 커졌다. 이밖에도 지난해 도입된 신포괄수가제도 적자에 한몫을 했다. 노조의 단체협약에 의한 직원들에 대한 혜택은 진주의료원의 적자 이유 중 오히려 적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도 5년 동안 급여가 동결되고 8개월 동안 급여를 지급받지 못한 노조한테 적자 경영의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온당치 않다. 더구나 우리나라 보건의료 인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크게 못 미치는 것을 고려하면, 진주의료원의 인력은 민간의료기관들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상에 가깝다. 민간의료기관이 효율적인 운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흑자를 내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적은 인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진주의료원 사태는 국민들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공의료를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안전망을 유지하는 것은 국민의 판단에 맡길 문제가 아니라 통치철학의 문제로 대통령이 결정할 문제다. 지도자가 결정할 문제를 국민에게 떠넘긴다면, ‘지방의료원 및 지역거점 공공병원 활성화’라는 박 대통령의 공약은 애초에 발표하지 않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또한 공공의료의 역할을 민간의료기관을 통해 할 수 있다는 홍준표 도지사의 생각도 그리 현실적이지 않다. 비록 의료가 공공재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저수가 제도 아래 이익을 내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는 민간의료기관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과연 충실히 치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진주의료원 사태는 향후 5년간 공공의료의 방향을 결정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기에 매우 신중하고 슬기롭게 해결해야 한다. 진주의료원 사태는 우리에게 그동안 미뤄왔던 숙제의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간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공공의료의 본연의 역할과 기능이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통해 재정립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의료기관이 무리한 진료나 비진료 분야의 수입 없이도 정상적인 진료를 통해 정당한 수익을 낼 수 있는 제도의 마련도 시급하다. 그것이 국민 모두가 바라는 바이고 국민을 위한 길이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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