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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역사

세자는 왜 왕의 수라를 먼저 먹었나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4. 10.

등록 : 2013.04.09 20:16 수정 : 2013.04.09 21:44

조선의 세자로 살아가기’ 나와
왕실문화 총서 9권으로 완간
왕과의 관계 등 세자 삶 조명

 

 

 

“서풍에 벼꽃 향 불어오니/ 농가에서 많은 상자 늘어놓은 일 축하할 만하구나/ 농가에 많은 상자 있어도 세금으로 보내니/ 고생 끝에 얻은 한 톨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조선 21대 왕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가 열아홉 살 때(1754년) 지은 ‘가을의 공로’라는 한시다. 풍년이 들어도 세금으로 다 뺏긴 탓에 곡식 한 톨까지 아껴야 하는 농촌의 현실을 그린 것이다. 단순히 세자로서 백성의 삶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부왕의 치세에 대한 완곡한 비판으로 읽힐 수도 있다.

 

같은해 지은 ‘시험 삼아 짓다’라는 시는 좀 더 위험하다. “용은 비늘 갑옷 감추고 범은 발톱을 거두었으니/ 골짜기 물결 아래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가/ 바람과 구름 천지를 어둑하게 하는 날이면/ 용은 옥동을 날아오르고 범은 산을 뛰어 넘으리.”

 

용의 비늘과 범의 발톱은 임금의 능력을 상징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가’라는 탄식은 영조의 치세가 길어짐을 비유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때가 되면 용과 범은 날아오를 것이라는 대목이 심상치 않다.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와 갈등 끝에 27살 되던 해에 뒤주에 갇혀 굶어죽었다.

 

미래 권력의 상징이자 현재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 바로 조선시대 왕의 공식 후계자인 ‘세자’의 위상이다. <조선의 세자로 살아가기>(돌베개 펴냄)가 ‘왕실문화총서’ 시리즈 마지막 9번째 책으로 출간됐다. 심재우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학부 교수 등 7명의 역사학자들이 <조선왕조실록> <왕세자책례등록> 등 조선시대 사료를 바탕으로 하여 집필했다. 왕의 아들로 태어나 세자 책봉을 받기까지 과정, 세자로서 받아야 하는 교육내용, 세자빈 간택, 아버지인 왕을 대신한 대리청정, 세자로 책봉됐으나 왕위에는 오르지 못했던 세자들, 형제·자매와의 관계 등이 풍부한 도판과 함께 서술돼 있다.

 

조선 500년 동안 모두 27명의 왕이 있었고, 29명의 세자가 있었다. 왕의 적장자(왕비에게서 태어난 큰아들)가 세자로 책봉된 뒤 왕위에 오르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실제 이런 경우는 7명에 불과했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후계자 선정을 둘러싼 권력 집단 간의 갈등이 주요 변수였다. 세자가 된 뒤에도 왕위에 오르기까지는 살얼음판을 걸어야 했다. 세자는 공식적인 의례에 참석하는 경우가 아닌 한 함부로 거처를 벗어날 수 없었고, 거의 하루 종일 공부하는 것이 생활의 전부였다. “주제넘게 정사에 관계되는 행동을 할 경우에는 여러가지 사단이 생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세자가 왕의 수라와 약에 독이 들어 있는지 먼저 맛보는 역할을 종종 맡았다는 사실은 왕과 세자의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이번 세자 편을 마지막으로 완간된 ‘왕실문화총서’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단 지원으로 ‘대중학술서’를 지향하며 펴낸 시리즈다. 2011년부터 <왕과 국가의 회화>를 첫권으로 시작해 ‘조선시대 궁중회화’ ‘조선 왕실의 행사’ ‘조선 왕실의 일상’ 등 세 분야에서 세 권씩 출간됐다. 세자 편은 <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 <조선의 왕비로 살아가기>와 함께 ‘조선 왕실의 일상’ 분야 세번째 책이다. 각 분야별로 책임연구자가 포함된 4~7명의 연구자가 함께 집필했다. 1447건의 국내외 고문서와 연구논문, 단행본이 참고됐고, 1844장의 도판이 수록됐다. 심재우 교수는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고증에 충실한 책, 문화사와 정치사를 종합적으로 연계한 책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돌베개 쪽은 완간을 기념해 분야별 기념세트를 판매하고, 오는 27일, 5월4·11일에 서울 역사박물관 대강당에서 저자 강연회를 연다고 밝혔다. (031)955-5028.

 

안선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