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훈 변호사 |
노회찬 전 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은 논리와 설득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모두 실패했다. 가장 큰 이유는 대법관들이 국민들과는 다른 현실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삼성공화국’, ‘검찰공화국’이라는 용어를 거부감 없이 사용하고 있다. 삼성과 검찰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견제되지 않는 권력의 상징이다. 그런 관점에서 검찰개혁과 경제민주화가 지난 대선의 중요한 시대정신 중 하나로 떠오르기도 하였다. 또한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의 핵심은 삼성이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대통령선거와 검찰조직에 영향력을 미치려고 한 정황이 당사자들의 대화를 통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적 헌정질서의 근간을 해치는 것으로서 매우 중대한 공공의 이익과 관련되는 문제였다.
노회찬 전 의원이 이른바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것은 2005년 8월이었고,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관리대상이라고 검사 6명의 실명을 공개한 것이 2007년 11월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특검이 진행되기도 하였지만, 기소된 검사는 아무도 없었다. 삼성이 일부 검사들에게 ‘떡값’을 제공하며 관리를 해왔는지에 대한 실체적 규명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후로도 2010년 4월에는 <피디수첩>이 ‘검사와 스폰서’편을 방송하고 이를 계기로 다시 특검이 진행되기도 했지만, 이번에도 관련 검사들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대법원이 노회찬 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파기한 때가 2011년 5월이었다. 대법원의 논리는 안기부에 의해 도청된 “대화의 시점은 이 사건 공개 행위 시로부터 8년 전의 일로서,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국회의원이라는 피고인의 지위에 기하여 수사기관에 대한 수사의 촉구 등을 통하여 그 취지를 전달함에 어려움이 없었음에도 굳이 전파성이 강한 인터넷 매체를 이용하여 불법 녹음된 대화의 상세한 내용과 관련 당사자의 실명을 그대로 공개한 행위는 그 방법의 상당성을 결여”했다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도 동일한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대법원의 논리는 그간의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실명을 거론하면서까지 수사를 촉구하고, 전직 검사 출신으로 삼성의 고위 임원이었던 변호사가 자신이 뇌물을 제공했다며 자신을 포함하여 관련자들을 수사·기소하라고 촉구했지만, 결과적으로 현실은 요지부동이었다. 또한 대법원 판결에는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이 언론과 검찰, 정치권 등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고, 검찰의 권력형 부정부패를 감시·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현재까지도 마련되지 않았다는 현실이 전혀 고려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검찰 고위 인사와 거대 기업의 부정한 결탁이 단지 “8년 전” 과거의 일이라고 판단하는 현실인식은 안일하다. 더욱이 그것이 과거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 진상을 명확히 하여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현재’의 시급한 요청이다.
판결은 시대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소통이어야 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현실인식을 그르쳐 논리와 설득, 소통에서 실패했다. 이번 판결에서 진 쪽은 무엇보다 대법원 스스로다.
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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