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대국민 사기로 전락시키려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선거가 끝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공약을 뜯어고치란다. 애초부터 지킬 생각이 없으면서 약속했다면 그건 사기다. 수상한 기류는 대선 직후 시작됐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12월23일 “선거 기간에 너무 세게 나갔던 부분은 다시 한번 차분하게 여야가 같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수정하겠다는 얘기다.
심재철 최고위원은 1월14일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대형 예산공약들에 대해서는 출구전략도 같이 생각하셨으면 한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다고 고백하는 게 전략이란다. 박근혜 당선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1월7일 인수위원회
발언이 있다. 좀 길지만 구어체 그대로 인용한다. 음미할 만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제가 공약을 발표할 때마다 이것이 재원이 어떻게 소요되며 이게 실현 가능하냐, 그것을 만든 분들이 피곤할 정도로 제가 또 따지고 또 따지고 그랬다. 그래서 확인을 받아 가지고 했는데, 물론 이것을 또 한 번 검토할 필요는 있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다져서 만든 공약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우선순위도 있고 그렇지만, 어쨌든 지켜질 때, 각 지역의 공약, 또 전체적 교육이나 보육이나 주택이나 이런 것에 대한 공약이 우리가 정말 정성을 들여 지켜나갈 때, 달리 우리가 노력을 안 해도 사회적 자본이 쌓여서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발판을 이번 정부가 만들 수 있다.”
옳은 말이다. 그는 2010년 6월29일 세종시 수정안 반대토론에서 “우리 정치가 미래로 가려면 약속은 반드시 지켜진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깨진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의 정책들은 쉽게 뒤집힐 것이고 반대하는 국민들은 언제나 정권교체만을 기다리며 반대할 것이다”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을 앞둔 2012년 12월2일 검찰개혁안을 발표했다. 그의 개혁안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법질서·사회안전’ 분과에서 구체적인 꼴을 갖추게 될 것이다. 강릉/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그렇다. 박근혜는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박근혜 정치의 본질이다. 정권교체 여론이 더 높았는데도 그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다수 유권자들이 그의 약속이 실현될 것으로 믿었다. 물에 빠져 죽더라도 여인과의 약속을 지키려 한 ‘미생’이 바로 박근혜라고 생각했다.
복지공약 갈등을 둘러싸고 박근혜와 다수 국민들은 같은 편이다. 반대편에 기득권 세력, 좀 심하게 표현하면 정치 사기꾼들이 서 있다. 사기꾼들은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라”고 충동질한다. 재정 건전성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서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려고 한다. 대한민국보다, 국민들보다, 박근혜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런 세력이다.
기득권 세력의 힘과 논리에 밀려 박근혜 당선인이 공약을 포기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박근혜 정권은 존재의 이유가 사라진다. 국민들의 저항이 벌어지고 박근혜 정권은 강제력을 동원해 제압하려다 실패할 것이다. 식물정권으로 전락하는 것은 물론이고 임기도 채우기 어려울 수 있다. 국가와 정치 시스템 자체가 붕괴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약속을 지켜야 한다. 재원은 대기업, 부자, 중산층에게 세금을 더 걷어서 마련해야 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들어가 있는 전문가들이 증세 검토안을 가지고 있다. 증세 항목의 우선순위가 효율성을 기준으로 부동산보유세, 소비세, 개인소득세, 법인소득세로 정리되어 있다. 형평성 개선 효과는 개인소득세, 법인소득세, 소비세 순서다. 주식양도차익, 파생상품 시장,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 방안도 있다. 비과세·감면 축소, 사회보장 기여금 확대는 당연한 일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공약집에서 “세입 확충의 폭과 방법에 대해서는 국민대타협위원회를 통해 국민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된다.
야당도 박근혜와 기득권 세력의 싸움에서는 박근혜 편을 들어야 한다. 박근혜가 성공하면 야당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것은 단견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중산층 복원 정책이 효과를 나타내야 야당 성향 지지층이 두터워질 수 있다. 오히려 박근혜 정권이 실패하면 더 나쁜 정권이 들어설지도 모른다. 지금은 모두에게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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