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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18대 대선

[중앙시평] 5년 뒤 민주당이 집권하려면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1. 8.

[중앙일보] 입력 2013.01.08 00:00 / 수정 2013.01.08 00:00

 

민주당은 대선에서 연달아 두 번 패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민주당이 2008년 쇠고기 촛불시위 때 대중의 불만과 분노에 편승해 정당의 주도성을 상실한 게 대선 2연패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길거리 전투의 소란스러움에 여의도 국회의 책임정치를 팽개쳤죠. 분노의 함성에 놀라고 두려워 자아를 내던져 버렸습니다.

 2008년 5월 민주당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저는 ‘이명박 시대, 민주당의 기회는 어디서 오는가’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했습니다. 대선에서 500여만 표 격차, 총선에서 개헌저지선(100석)조차 실패…. 이게 당시 민주당의 성적표였죠.

 시대가 민주당에 보낸 신호는 분명했습니다. 386운동권과 친노의 유효기간이 끝났다는 거죠. 386운동권은 김대중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로 정치권에 들어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역풍 덕에 ‘탄돌이’란 이름으로 세를 불렸으나, 전 국민적 스케일의 지도자를 배출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노무현 시대의 편가르기 정치와 ‘증오와 분열’의 정서도 심판받았습니다. 친노는 노무현의 꿈과 낭만으로 포장했지만 선거 민심은 그들을 편파와 독선, 무능한 세력으로 단죄했습니다.

 워크숍에서 저는 김대중과 박정희에게서 배우라고 민주당에 주문했죠. “김대중이 세 번 실패 때까지 의존했던 세력은 호남과 민주화였다. 네 번째 도전에서 그는 자아를 확장했다. 호남을 호남+충청 지역연합으로, 민주화를 민주화+산업화 세력연합으로 확장함으로써 집권에 성공했다.”

 “박정희는 민주당의 적이 아니다. 산업화의 공(功)은 공대로 흡수하고, 민주화의 과(過)는 과대로 비판하면서 민주당의 역사관을 확장해야 한다. 김대중도 박정희와 화해하지 않았나. 대한민국을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보는 노무현식 역사관에 갇혀선 한국의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

 저는 지금도 박정희의 산업화+자주국방, 김대중의 민주화+남북화해, 노무현의 시민정치+정경단절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어 세우는 것에 민주당 집권의 길이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워크숍에서 자아의 확장, 역사관의 확장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토론이 몇 번 오가다 일부 의원이 “지금 거리에서 쇠고기 시위가 커지고 있는데 한가하게 토론이나 하고 있을 때냐. 밖으로 나가자”고 하니 논의가 중단되더군요.

 그 뒤 민주당이 정당 주도성을 상실하고 친노 문화권에 굴복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노무현 대통령 서거(2009년 5월)=재야의 문재인 데뷔, 야권 주도력이 민주당에서 노사모로 이동

②나꼼수 방송 시작(2011년 4월)=김어준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 ‘닥치고 정치’ 같은 증오문화의 사회적 확산

③19대 총선(2012년 4월)=한명숙·문성근과 386운동권의 민주당 장악, 이해찬 대표와 문재인 대선후보 선출.

 5년 뒤 민주당이 집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당과 대중은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정당은 대중의 요구를 조직화하고 정책화하는 리딩(leading)그룹이지 대중의 눈치를 보고 따라가는 팔로잉(following)집단이 아니랍니다. 민주당이 SNS 지도자들이 행사하는 대중적 영향력에 휘둘리면 대중은 정당을 우습게 봅니다. 자칫 맹수한테 물려 죽는 조련사 신세가 될 수 있죠. 정당만이 집권세력이 될 수 있고, 정당만이 집권 프로그램을 짤 수 있습니다. 대중이 정당을 제치고 스스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는 혁명상황이거나 무정부상태일 뿐입니다. 민주당은 대중 혹은 시민사회 연합에 끌려다니는 나약한 인상을 극복해야 합니다. 집권 주도권을 회수하는 데서 민주당 집권의 길은 시작됩니다.

 자아축소형 민주당은 자아확장형으로 체질을 바꿔야 합니다. 노무현 정신에만 갇혀 있다간 만년 야당 하기 십상입니다. 지지층을 넓히기 위해 박정희 세력(김종필·박태준)과 손잡은 김대중에게서 자아확장의 방법론을 배워야 합니다. 박정희와 이승만 연구를 통해 그들에게 공과 과가 두루 있다는 균형 잡힌 역사관을 당의 강령으로 승인해야 할 겁니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자학적 역사관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죠.

 민주당에서 누가 자아확장 투쟁을 감행할지 궁금해집니다. 손학규나 김두관, 정세균? 아니면 김부겸이나 김한길? 친노 중에서 균형 잡힌 사고방식으로 평판을 얻고 있는 김병준 가능성도 있겠군요.

 당내 투쟁이 없다면 야권 지지층은 당 밖에서 새 리더를 찾으려 할 겁니다. 가장 유망한 사람은 역시 미국에 머물고 있는 안철수겠죠. 그 다음은 손등을 이마에 올리고 가만히 정치권을 응시하고 있는 서울시장 박원순이겠네요.